최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통과됨으로써 제주 감귤산업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비록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때까지 무관세 감귤 의무수입물량은 100톤에 불과하나 값싼 칠레산 과일의 수입증가는 국산과실의 소비감소와 가공품수요 대체효과로 이어져 감귤산업에 일정한 영향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칠레 주산물인 포도의 경우 계절관세를 적용, 11~4월 수입분에 대해 향후 10년에 걸쳐 관세를 철폐키로 함에 따라 출하시기가 겹치는 한라봉이 입을 피해는 커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런 터에 육지부 한라봉 재배면적도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제주 재배농가로서는 여간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본지에서는 현지를 직접 방문, 육지부의 한라봉 재배실태와 성공 가능성 여부 등을 점검해 봤다.

22일 오전. 광주공항 상공에서 내려다본 대지는 온통 은빛 물결로 출렁이고 있었다. 시설 하우스였다. 과거에는 이 지역이 대부분 논이었으나 쌀이 과잉 생산되고 또 수입개방이 예상되면서 대체농업으로 과채류를 재배하는 시설 하우스가 대거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많다 싶을 정도의 시설하우스가 언제든 한라봉 재배지로 둔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자의 지나친 상상일까.

육지부 한라봉 재배실태 취재를 위해 기자가 찾은 곳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일본에서 한라봉 묘목을 들여와 재배에 성공한 이영길씨(61)의 효광농원(전남 나주시 석현동).이씨가 한라봉과 인연을 맺게 된 때는 제주보다 2년 정도 앞선 지난 87년.

 이씨는 일본에서 묘목을 들여와 심은 첫해 냉해로 실패를 경험했다. 이씨는 이 때 실패를 거울삼아 92년에 다시 일본과 제주에서 한라봉 묘목을 들여와 재배한 결과, 94년 초결실을 거쳐 96년부터는 제대로 된 상품을 수확했다. 금년의 경우 2000평에서 1만2천kg를 수확했다.

특히 ‘골든벨 한라봉’이라는 브랜드로 백화점 등 대형유통매장에 직거래되는 이씨의 한라봉은 과육이 우수하고 당도가 15도 이상 높아 유통업계에서는 최고의 상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씨는 “납품하고 있는 삼성프라자 유통담당 직원이 ‘이건희 회장은 ’골드벨 한라봉‘만 찾는다’고 귀띔해 줬다”고 자랑했다.

때문에 이씨의 한라봉 농장은 도의회 등 제주의 각급기관에서 육지부 한라봉 재배실태 조사 시 빠뜨리지 않는 단골 방문지가 되고 있다. 또 도내 한라봉 농가에서도 한해 200여명 이상이 이씨 농장을 견학하고 있다.

기자가 이씨 농장을 찾은 날에도 표선면농업인후계자협의회의 방문이 예정돼 있었고, 전화로 재배기술을 문의하는 도내 농가도 있었다.

이런 연유로 이씨는 전남 등 육지부 한라봉 재배농가에 기술자문을 하는 등 한라봉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영길씨 등에 따르면 그 동안 제주도에 한정됐던 한라봉 재배지역은 겨울 날씨가 비교적 포근한 남해안에서 최근 전북 지방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미미한 수준. 현재 육지부 한라봉 재배면적은 22ha로 제주(739ha)의 3%에 불과하고, 예산생산량도 제주의 0.8%인 71톤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 역은 전남의 경우 나주시를 비롯해 고흥, 광주, 신안, 보성, 완도, 해남 등, 경남 거제와 진주, 전북 고창, 김제 등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육지부 한라봉 재배가 확산되는 것은 한라봉이 최고의 고소득 작물로 평가되는 데다 기존 과채류 재배보다 일손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또 전남 고흥, 보성 등 일부 유자 주산지에서는 최근 몇 년간 유자 가격 폭락으로 인해 작목 전환 차원에서 시작됐다.

이에 자치단체별로 묘목대 일부와 시설비 일부를 지원해 한라봉 재배를 권장하고 있다.

육지부의 한라봉 재배가 제주에 비해 유리한 점은 우선 기존 하우스 시설을 이용하기 때문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안 든다는 것. 한라봉 재배농가의 95%가 기존 유자 및 과채류 재배시설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화산토인 제주에 비해 지력이 좋고 당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생육기 일조량이 많은 점과 일교차가 큰 점도 장점이다. 이와 함께 한라봉 주 소비지인 서울 등 대도시와의 거리가 짧아 제주에 비해 물류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점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 유류비 등 경영비 부담이 높고, 재배기술이 열악해 급속한 재배 확산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의 경우 한라봉 재배시 거의 무가온이고 기온이 많이 떨어질 때나 조기출하를 위해 보조 가온하고 있는 정도다.

하지만 육지부는 10월 중순부터 수확 때까지 항시 가온을 해야 하고, 봄철 새순이 돋아날 때도 저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가온이 필수다.

때문에 한라봉 2000평을 재배하는 이씨의 경우 연료비 부담액이 수확기 때까지 7~8백만원을 포함해서 연간 1000만원에 이르고 있다.

또 재배기술의 열악도 극복하기 힘든 요소다. 육지부 한라봉 재배형태를 보면 대체로 한라봉과 다른 작물을 겸업하고 있다. 시설의 50%는 한라봉을 밀식재배하고 나머지는 고추 등 다른 작목을 재배하다 한라봉이 성목이 됐을 때 나머지 시설에 옮겨 심는 식이다.

한라봉은 많은 돈을 투입해 식재한 후 3~4년은 기다려야 수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몇 개월만에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작목을 같이 재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돈이 되는 작목에 관리를 치중하면서 한라봉 관리는 소홀히 하는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종합하면 육지부 한라봉 재배면적은 확실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것이 당장 제주 한라봉 농가를 위협할 만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오히려 한라봉 소비가 서울 등 몇몇 대도시에 집중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육지부 재배지역 확산이 이들 지역으로까지 한라봉을 알리는 데 도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라봉 연간 예상생산량은 제주(8623)와 다른 지방을 합해도 8700톤 정도. 남한 전체 인구를 4500만으로 잡았을 때 아직까지 한라봉을 만져보지도 못한 사람이 부지수란 말이 된다.

한 유통전문가는 “한라봉보다 ‘맛이 좋은 과일’이 나오면 모를까 지금의 한라봉 가격 기조가 쉽게 꺾일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한라봉 연간 생산량이 5만톤에 달해도 문제가 없다”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생산량이 아니라 품질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도내 농가들의 한라봉 재배기술이 육지부 농가들보다 훨씬 앞서는 점을 잘 활용해 품질 차별화를 도모한다면 육지부 한라봉 재배면적 확산이 도리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도내 농가들이 눈앞의 작은 이익에 급급해 익지 않은 한라봉을 출하하는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 또 환경적 측면은 어쩔 수 없다 해도 토양관리를 충실히 해 한라봉 당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이영길씨는 “육지부 한라봉 재배농가가 느는데 대해 제주 농가가 우려하는 심정은 이해한다”며 “그러나 당도가 떨어지는 미숙과를 출하해 상품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등 위기는 제주농가들이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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