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면서 느림으로 출발한다. 돌이 되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고, 커가면서 걷고 뛰고 달린다. 잘 뛰는 사람을 일컬어 「불 벤 도새기치룩 잘도 돌암쩌」라는 속담이 생겨 나기도 했다.

이렇듯 느림에서 출발한 인간들이 빠름에 대한 문화적 상상력은 치열했다. 인간들은 무협지에 나오는 도사(道士)가 하룻밤에 도채비처럼 백리 천리를 오고 간다는 축지법(縮地法)을 현실화 시키기 위한 꿈을 오랜 세월 꾸어 왔다. 축지법을 쓰려는 상상력은 자동차와 기차, 고속철과 비행기, 우주선 등을 탄생시켰다. 초고속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물로 뱅뱅 돌아진 섬에서 대이어 살아 온 제주 사람들이 육지로 가려는 상상력도 무한이었다. 바람만 까마귀 떼처럼 나는 황량한 섬에, 헌 치마로 흙을 날라다 오름들을 만들었다는 설문대 할망에게,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 주십사고 빌었던 전설은, 제주인들의 상상력을 극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대청바당을 건너는 꿈을 물마루에 걸어 놓고,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 달라고 소원을 빌었으나, 결국은 필요한 명주 백통을 모으지 못해, 백일몽이 되고 말았으니 애통 절통한 노릇이 아닌가.

제주사람들은 60년대까지만 해도 일주도로인 신작로를 이용해서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야 했다. 제주성안과 서귀포를 오가는 길도 반나절이나 걸리던 시절이었다. 당시 중산간 마을에는 가뭄에 콩 나듯이 멸치를 파는 트럭이 왔었다.

꼬마들 눈망울엔 초가집 만한 트럭이 신통망통할 수 밖에. 더구나 도일주하는 수학여행도 트럭에 학생들이 도새기처럼 꾸역꾸역 타고 다녔다. 미군들이 꿩사냥하러 타고 가는 짚차도 볼만한 구경거리. 코쟁이들을 향해 헬로! 헬로! 외처대면 껌까지 던저 주었으니, 그날은 재수가 고물줄처럼 늘어진 날이다.

70년대에 접어들면서 밀감소득이 오르니까, 오토바이가 바르릉 바르릉 경적을 울려 대면서 길을 누볐다. 오토바이 사고로 저승갔다는 애절한 소식이 간간히 들려오기도 했다.

그리고 농촌에는 경운기가 마소의 일을 대신하게 되었고, 볼일이 있을 때는 타고 가기도 했다. 이 시기부터 시내버스와 택시가 대중교통이 주종을 이루었다. 산업화 사회의 교통 풍경이다.

90년대부터 마이카 붐이 일기 시작했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속담처럼, 자동차를 할부로 판매하는 바람에 느영 나영 구분 없이 자가용들을 구입했다.

직장을 가지면 우선 자가용을 사기 때문에 어떤 가정에는 두 서 너대의 자가용이 있게 마련. 가정마다 직장마다 주차난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농촌에도 경운기와 농사용 트럭, 자가용을 함께 가진 집도 늘어가고 있다. 이른바 집은 없어도 자동차 없이는 못 사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축지법을 쓰는 자동차는 편리한 순기능만 안겨 주는 문명의 이기만은 아니다. 자동차가 늘어남으로 인해 택시와 버스 등 대중 교통은 사양길에 접어 들었다.

도시의 거리마다 자동차가 홍수를 이룬다. 골목마다 주차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상가도 주차장이 없으면 파리 날리기 일쑤다. 대중들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이들 보다 많아도 눈썹 하나 꿈쩍 않은 신경마비증에 걸린지 오래다.

자가용을 몰다 보니 운동량이 모자라서 배불뚝이에 다리는 비실비실이다. 자동차 경적소리에 귀머거리 되기 십상이고, 고속질주하는 대형트럭 때문에 등골이 오싹, 대가리가 히여뜩 하는 일이 한 두 번만 껵었는가. 아수라장이 되는 무질서 운행으로 말미암아 아무리 흥부 심성을 가진 사람도 골백번 쌍욕을 질러대는 일이 비일 비재하다.

이러한 시기에 도법스님과 수경스님이 이끄는 생명평화탁발순례가 24일부터 제주순례를 시작한다는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다.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순례다. 우리도 걷자. 걸으면 건강해지고 여유가 생긴다. 머리가 맑아지고 사색이 깊어진다.

신경성도 소화불량도 끝. 가족끼리, 친구끼리, 이웃끼리, 직장 동료끼리, 정다운 대화를 나누며 걸어 보자. 콧노래도 흥얼거리면서.

시조시인     현      춘      식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