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버거움은 새해 벽두를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사 모두가 결국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만 같다. 아무리 어려워도 작은 욕심에 휘둘려 노심초사하고, 아등바등하는 것이야말로 사악(邪惡)한 신이 바라는 것일 수 있다. 무슨 일이 닥쳐도 극정 적으로 생각하고, 늘 웃으며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이라는 한 여성문인의 말이 기억난다.

세상사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유대인들의 이러한 속담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부자는 누구인가?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만족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울 줄 아는 사람이다. 또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자기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다.” <naver, Talmud>

이 말은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은 흔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굳게 설 수도 있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화엄경과 신라의 고승 원효가 제시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세상사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경구다.

유년시절 나의 한 친구가 요즘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중학교 시절이 이야기다. 우리들은 도서관에도 같이 가고 학교에서도 단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도시락을 매일 같이 먹었다. 이 친구는 도시락을 열고 반찬을 먹을 때 꼭 맛이 있어 보이는 부분부터 먹었다. 또 정심시간에 교실에서 도시락을 열고 점심을 먹기 시작 할 때 어떤 친구는 제일 맛없어 보이는 것부터 먹었고, 어떤 친구는 제일 맛있어 보이는 것부터 먹는데 나와 나의 단짝친구는 후자 쪽이었다.

그 선택의 결과는 똑 같은 도시락을 먹는 것이지만 맛없는 것부터 먹는 친구는 항시 맛있는 점심을 계속 먹게 되고, 맛있는 것부터 먹은 친구는 항시 맛없는 점심이 되고 말았다“는 말이다.

이는 모든 세상사는 마음먹기에 따라 같은 문제도 180도 달라 질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것에 대한 엉뚱한 비약인지도 모르지만, 맛없는 것부터 먹는 도시락과 맛있는 것부터 먹는 도시락을 선택하는 마음은 자신의 마음먹기 나름인데 결과는 맛있는 점심과 맛없는 점심으로 갈라놓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삶에는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이 서로 엉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단맛만을 맛보며 살기 원하는 우리들이다. 인생은 항상 밝고 즐거운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고 환상이다.

아수라장 같은 세상을 누구도 어떤 절대 권력자도 바꿀 수도 없다. 이 건 하느님의 개시 인지도 모른다. 승리자의 환호와 패배자의 좌절 속에 세상사는 그냥 굴러 갈 뿐이다.

각자 본인의 책임 아래 마주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고, 세상이다. 당연히 상처가 없을 수 없다. 남이 해주는 몇 마디의 위로의 말로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힐링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나아지는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와 자신의 마음먹기에 기대어 시간과 함께 아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힐링의 본질은 셀프힐링 이다. 방법은 사람마다 서로각각 이다. 누구는 길을 걷고, 누구는 산행을 하고, 누구는 수다를 떨고, 누구는 폭음을 하고, 누구는 책에 파묻히고……다 제 각각일 것이다. 올 한해에도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받으며 세상은 굴러 갈 것이다. 젊음의 상처도 있고, 중년과 노년의 상처도 있을 것이다. 그 치유는 자신의 몫이다.

어떤 경우든 남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 힐링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초적으로 혼자이기 때문이다. 이 지구상에 생명은 모두 혼자다. 지구상에는 1,000만종 이상의 생명이 있다고 한다. 그 생명 중에 하나가 인간이다. 그리고 이지구상에 인구도 67 억 명이다.

그 67억 명중의 하나인 ‘나’는 혼자이다. 탄생도 혼자이고 죽음도 혼자다. 탄생과 죽음 사이 일생도 어떻게 보면 혼자 이다. 사람의 삶을 혼자라고 생각하면 쓸쓸하고 모든 세상사가 부질없고 덧없음을 느끼지만 그래도 참고 견디면서 누구나 한번은 넘어야하는 죽음의 산을 넘어야 하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이런데도 무명(無明)에 가린 자신은 “자신”을 중심가치에 올려놓고 자신의외의 모든 가치는 옆으로 내려 놓고 산다는 것이다.

우리들 뿐 아니라 모든 탄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면서 인연이 다하면 사그라진다는 움직일 수 없는 진리 앞에서 허허로운 마음먹기로 조금이라도 한 겨울의 추위를 이겼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을 해본다.

모든 세상사가 마음 씀씀이에 따라 정감 있는 일을 만들 수 도 있고 아니면 냉혹한 분노와 결투만이 있는 일을 자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낙원의 저자인 밀톤은 실낙원의 마지막 장에서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고,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고했다.

수필가 김 찬 집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