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키지 못했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이것만이라도 꼭 지켜내야 한다고 저에게 말했던 분들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남녀노소 뿐만아니라 각계각층에 있는 많은 분들이, 심지어는 故 김현돈 교수님도 암투병 와중에 꼭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그 어떤 변명도, 사과의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낯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다. 

철거하는 날,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전국의 네티즌들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며 울분을 터트렸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중장비의 날카로운 발톱에 할퀴어지고 두부처럼 허물어져버렸다. 내 심장을 향해 들이대는 것처럼 찢겨지는 아픔과 고통이었다. 그렇게 제주의 빛, 색, 바람, 바다를 배경으로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물의 집, 카사 델 아구아’는 불통의 행정, 야만의 권력과 이익에 함몰된 기업가의 논리 앞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것은 땅주인인 (주)부영회장의 것도, 제주도에서 다섯 번씩이나 도백의 직을 수행하는 지사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제주도민뿐만 아니라 제주도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 문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것이었다. 그래서 철거반대 목소리는 제주섬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되돌아 온 건 중장비의 폭거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1분1초의 주저함도 없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제주도정은 철거반대를 외쳐온 이들에게 다시 한 번 비수를 들이댔다. 담당국장은 철거 당일 언론기고까지 하면서 훈계까지 나섰다.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없으니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하는 것이라며 ‘인지상정’, ‘무모한 발상’, ‘도민공감대’를 운운했다. 도민에게 봉사의 책무가 있는 그들이 대체 여론을 무시해도 이정도로 무시할 수 있는가?

정말 부끄럽다. 그동안 제주도정은 국회의원도, 도의원도, 국가기관도 없었다. 도의회가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도정질문, 상임위 질문을 통해 지적함에도 이렇게 묵살을 하는데, 힘없는 민원인은 오죽하겠가? 이 발칙한 오만함과 권력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2013년 3월 6일은 제주건축문화가 사망한 날로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구 제주대학교 본관, 구 제주시청사에 이어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까지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제 문화파괴와 문화부재의 섬으로 제주의 이미지를 추락시킨 주체로 제주도정을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 ‘세계로 가는 제주, 세계가 찾는 제주’란 민선5기 제주도정의 슬로건을 내려야 한다. 제주도 자연의 아름다운 생명력에 감동하고 영감을 받아 만든 세계예술인들의 작품을 존중하는 열린 마음이 없다면,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제주도의 비전은 포기해야한다. 관광객 1천만을 돌파하고 외국인관광객 2백만명을 돌파한 들, 문화의 중요함을 모르고 문화예술인을 존중하지 못한 채 언제까지 관광객 머릿수만 세면서 숫자놀음과 업적지향주의의 정책만 펼칠 것인가? 

세계적인 사진작가 김중만씨가 철거위기에 놓여있던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를 제자들과 함께 작업하고 서울 논현동에서 사진전을 했다.
사진전시작품을 담은 도록의 제주도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제 우리는 그(레고레타)가 원치도 않는데 그가 그토록 아름답게 지어놓은 집(카사델아구아)을 부실려고, 버릴려고, 미친 듯이 지우려고 합니다. (중략...)아 영원히 다시는 볼 수 없는 지랄 같은 슬픔안고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레고레타의 유작도 잃고 아름다운 섬을 사랑해주는 이방인들의 마음도 잃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일반인들에게 자유롭게 개방되어 제주도로서는 문화와 함께하는 관광아이템으로 활용가치가 높았던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하얀 매화 꽃망울이 봄을 알리는 3월, 오만한 행정의 봄날은 가는데 제주여! 시대를 뒤로하고 너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이냐? 제주도에서 두 번 죽은 세계 건축거장 레고레타가 묻는다.


이선화 제주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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