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삶의 방식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선 자신이 하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이루어내고 가꾸어가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산다.
특히 그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해 가는 예술가라면 여기서 말하는 ‘일’이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에게 ‘일’의 본질은 같다고 생각한다.
최근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들의 업무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높다. 뿐만 아니다. 대형마트의 점원, 콜센터 직원, 항공사의 승무원, 민원실 직원에 대해서도 그렇다. 공통점은 이들 모두가 감정노동자라는 것이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야만 한다. 또한 그 일은 사람의 감정과 노동력을 착취하고 괴롭히며 성과물을 내어놓는 일이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감정노동자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이 하는 ‘일’은 착취가 심하다. 다시 말해 타인의 감정을 착취해, 자신의 부를 쌓아올리거나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나르시시즘이 사회 전반에 걸쳐 팽배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그렇게 상대방을 착취하지 않으면, 자신이 착취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착취의 강도는 점점 더 거세어진다. 이는 오로지 자신의 감정이 착취당하는 패배를 겪지 않기 위하여 이뤄지는 일이다. 
영국의 철학자 버틀랜드 러셀은 ‘일’이란 차곡차곡 싸여 존재를 완성하는 기쁨의 근원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것은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라고도 강조했다.
행복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일을 위해 행복을 포기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잘못된 수단과 방법으로 앞과 뒤가 엉켜버린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는 오늘도 화가 난다. 그저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자꾸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결국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 어찌되었든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그런데, 화가 나도 화를 가라앉히는 방법을 도무지 모르겠다. 과연 내가 일을 잘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과연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행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내 일로 인해 행복해지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사석에서 만난 한 감정노동자의 하소연을 옮겨 적어보았다.
누구라도 사람이라면 행복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감정이 더 이상 다치지 않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거나 착취하지 않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들 모두는 그래야만 비로소 행복과 일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교육의원 윤 두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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