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행복한 우리학교] 1. 어도(於道)초등학교

어도초 5학년 학생들이 지난 여름 첫 발간한 중국어 신문을 들고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고기호 기자

제주형자율학교 2년차```전교생 61명 고작이지만

1만평 넓은 교지에 계절마다 텃밭 가꾸기

재밌는 중국어수업, 마음씨 좋은 교장'쌤'```우리학교 자랑

▲높은 가을하늘, 그 보다 더 청명한 아이들의 목소리

가을 햇살이 뜨겁던 지난 23일, 한 초등학교의 평화로운 풍경 밖으로 중국어를 따라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흘러나왔다. 이날은 중국어 수업이 있는 목요일 오후. 어도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이다. 예쁘고 활기찬 중국어 선생님(김민혜 교사)의 얼굴을 볼 수 있는데다 나름 자신 있는 중국어 회화실력을 뽐내다보면 지루한 수업시간이 금세 지나가기 때문이다.

이 날의 주제는 날짜 말하기. '今天是几号?(오늘은 몇 월 며칠입니까?)‘ 선생님이 먼저 중국어로 묻자, 아이들이 오늘의 날짜를 더듬더듬 읊어 내려갔다. 선생님은 다시 달력 속 날짜를 이리저리 바꿔 가리켰고 아이들의 눈동자는, 중국어 숫자 발음을 떠올리느라 바빠진 머릿속을 말해주듯, 천장으로 솟구쳤다 다시 선생님에게로 향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수업이 끝났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울리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복도로 뛰쳐나가며 계단에서 우연히 마주친 교장선생님에게 '老师, 你好'(선생님, 안녕하세요?)라는 중국어 인사를 자연스레 건넸다.

▲중국어가 가져다 준 열기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자리 잡은 어도초등학교(교장 박종욱)가 중국어로 활기를 가득 머금었다. 지난해 제주형자율학교로 지정되며 재능기악과 놀이국악, 창의미술, 중국어를 자율학교 프로그램으로 선정했는데 아이들의 관심을 산 건 단연 중국어였다. 성조(음의 높낮이)가 뚜렷한 중국어 특유의 발성이 호기심 많은 초등생들에게는 재미있게 느껴졌을 터. 게다가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학교에서 배운 간단한 회화를 실제 거리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중국어가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호기(好機)를 만들어주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중국어 수업은 올해로 2년차에 접어들었다. 제주형 자율학교의 지정이 최대 6년인 점을 감안하면 저학년 아이들은 앞으로 4년간 더 중국어를 배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특히 최근에는 외국어 경연 대회가 마을과 도 단위로 심심치 않게 마련되면서 아이들이 회화 실력을 뽐내며 성취감과 자신감, 더불어 친구들과의 우정을 다질 기회도 많아졌다.

실제 5학년 중국어 수업이 이뤄지던 이날, 바로 옆 6학년 교실에서는 다음날 있을 제8회 제주글로벌외국어축제에 나가기 위한 6학년 누나 형들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중국어 노래 부르기 부문에 출전한 네 명의 학생들은 '치파오'라고 불리는 중국전통의상을 입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중국어 버전을 열창했다.  

앞서 지난여름에는 중국어에 대한 학생들의 애정과 관심을 듬뿍 담은 제1호 중국어 학교 신문 '니하오! 어도미(你好! 於道美)‘를 발간하기도 했다.  

▲농촌 학교여서 좋다

사실 어도초가 중국어에 각별한 정성을 쏟는 것은 ‘작은 학교’의 한계를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악과 같이 도구가 필요한 프로그램은 여느 큰 학교의 지원을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다.

반면 농촌에 위치한 작은 학교이기 때문에 이 곳 아이들만이 누리는 호사도 있다.

지난 봄 마을 탐방이 그랬다. 아이들은 매 계절 걷기 좋은 어느 시기 마을 둘레 길을 걷는다. 마을에는 이미 복지회관을 출발해 마을의 갯산밭과 답대, 머댕이왓 등을 잇는 12.6㎞의 탐방로가 개설돼 있다. 봉성리는 어도오름(143m)을 비롯해 애월읍에서 가장 많은 9개의 오름을 가진 마을. 그런 만큼 산림이 무성하고 자연환경이 좋아 아이들이 계절마다 다른 자연의 냄새를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1만평에 이르는 넓디넓은 교지도 어도초 만의 자랑거리다. 놀이시설이 있는 운동장과 천연잔디 운동장이 계단을 사이에 두고 2단으로 분리돼 있다. 도심 아이들이 인조잔디의 유해 성 우려와 관리의 편리 사이에 서 있음을 상기한다면 천연잔디 위에서 마음껏 뛰어 놀 수 있음은 소규모 학교 아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임이 분명하다.  

드넓은 교지 한 편에 자리한 우영밭(텃밭을 나타내는 제주어)도 아이들의 마음을 키워주는 일등공신이다. 매년 봄이면 모종을 심고 가을이면 수확한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며 귤을 따는 겨울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이 모든 활동에는 전교생이 빠짐없이 참여한다.

어도초 박종욱 교장.
▲또 하나의 상징

그리고 여기, 어도초를 빛내는 또 하나의 상징이 있다. 박종욱 교장이다.

2003년 백혈병을 앓았던 박 교장은 병이 채 낫기도 전인 이듬해부터 난치병 학생을 돕기 시작해 지금까지 제주도교육청 ‘작은 사랑의 씨앗’ 운동본부에만 4400만원을 기탁했다. 병석에 눕고 보니 가장 힘든 것이 외로움임을 알았기 때문. 도움을 받은 학생은 36명이나 된다. 교육자의 제일 가치가 사랑이라면 '아픈 학생들의 천사'를 교장으로 둔 어도초 아이들은 더없는 행운아다.  

박 교장이 앞에서 어도초를 이끄는 선장이라면 마을 살리기에 두 팔을 걷어붙인 주민들은 학교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드는 와중에서도 이마저의 수를 유지하는 것은 1990년대 이후 마을 주민들이 부단히 학부모 유치에 노력했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연립 17세대를 지어 23명의 학생을 확보한 데 이어 지금도 부지를 마련, 계속해 건축비용을 모으고 있다.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마을 초입에는 72년의 역사를 가진 어도초등학교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학교를 둘러싼 낮은 담은 학교가 모두에게 열려있고, 주민 모두가 아이들의 일상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동시에 이 낮은 담은, 아이들 하나하나가 봉성리 마을의 소중한 희망임을 알려준다.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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