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신 연구사의 제주식물이야기
②빌레를 지키는 호랑나무가시

▲ 유럽에선 크리스마스 트리로, 제주에서는 잡초보다 더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고 있는 호랑가시나무. 나무가지마다 달려있는 빨간 나무열매가 인상적이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올 겨울도 거실 한쪽에 다채롭게 장식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자리를 잡을 것이다. 트리에 여러 장신구와 등을 설치하고, 큼지막한 양말이 걸린 모습을 보면 추운 겨울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지난 계절까지는 그저 무심한 나무로만 바라보다가 겨울동안 새로운 감동과 함께 사랑방의 중심이 되어 돌아온 ‘크리스마스 트리’. 겨울을 느끼게 하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기도 하는 이 존재의 가치는 사람마다 각양각색일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소재는 지역별로 다양하다. 눈이 많이 내리고 침엽수가 많은 지역에서는 ‘전나무’나 ‘구상나무’ 같은 소재들이 많이 쓰이지만, 유럽에서는 초록색 잎에 붉은색 열매를 가진 ‘호랑가시나무’를 사용하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엽서나 사진 속에서 초록의 잎과 빼곡하게 붙어있는 붉은 열매의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이 붉은 열매가 외국에서 분포하는 식물처럼 인식한다. 강열한 붉은 열매와 잎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우리나라와는 뭔가 어울릴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낯선 식물은 앞서 언급한 ‘호랑가시나무’로, 감탕나무과(科)의 식물이자 외국에서는 흔히 ‘holly’라 불린다. 원래 호랑가시나무라는 이름은 잎 가장자리에 돋아난 뾰족한 가시가 호랑이 발톱처럼 보이기도 하며, 호랑이가 등이 가려울 때 등을 기대고 긁었다는데서 유래했다. 그 만큼 가시가 굉장히 날카롭다는 뜻이다.

우리는 주로 가로수로 많이 심는 ‘먼 나무’를 비롯해 꽝꽝나무, 감탕나무 같은 ‘상록성’인 종류와 대팻집나무나 낙상홍처럼 ‘낙엽수’를 접한다.

이들 중 꽝꽝나무를 제외하면 모두 붉은색 열매가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감탕나무과의 식물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가로수나 조경수로 많이 이용되고 있으며, 특히 호랑가시나무는 가시 때문에 생울타리용으로 존재감을 발휘한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호랑가시나무는 우리 제주에서는 아주 푸대접을 받고 있는 식물이라 생각된다. 손바닥만 한 빌레밭 한 구석, 밭담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자라는 경우가 많아서 농사활동에 지장을 주고, 무엇보다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면 그 고통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부의 입장에서는 밭의 잡초보다 더한 천덕꾸러기로 취급당했을 것이고, 늘제거해야하는 대상임에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 주변에서 차츰 사라지게 되고 지금은 방목지역 주변이나 습지, 일부 곶자왈 지역에만 주로 관찰되는 종류가 돼버렸다.

현재 남아 있는 자생지를 보면, 현무암질용암류 중에서 지상에 노출된 부분이 평편하며 크고 작은 동굴지대를 만드는 용암류인 빌레용암류가 산재한 지역이 주요 생육지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호랑가시나무는 계속 잘라내더라도 강인한 ‘순’을 만들어 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간다. 또한 다른 식물들은 자랄 수 도 없을 것 같은 ‘빌레용암’의 틈새로 뿌리를 둬 늘 그 자리를 지키고, 후손을 남긴다.

그래서 호랑가시나무는 이런 황량하고 딱딱한 빌레지역의 개척자이기도 하고, 때로는 수호자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수세대를 걸쳐 남긴 지금의 자생들이 사실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척박한 조건을 이겨내고 독특한 제주의 환경에 적응했다는 것으로, 앞으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또한 어쩌면 이런 개척정신과 강인함은 제주를 가꾸고 지켜온 사람들의 삶과도 많이도 닮아 있다고 생각된다. 빌레용암이 금이 가고 깨진 틈에 자리를 잡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고, 강인하지만 따뜻한 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한겨울 나무에 쌓인 흰 눈과 붉은색 열매는 얼어붙은 겨울에 그나마 추위를 잠시라고 잊게 해 주는 존재일 것이다. 항상 강한 부분들이 그 것의 전부처럼 느껴질 때가 있게 마련이지만, 가시의 날카로움 속에 붉은 열매있어 뭔가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호랑가시나무의 꽃말은 가족의 행복, 즉 ‘평화’다. 밖으로는 날카로운 가시로 무장한 초록의 잎과 안쪽으로는 빼곡하게 자리 잡은 빨간색 열매는 안정감을 주며 꽃말처럼 든든한 울타리 속에 행복한 모습을 한 가족의 온기를 상상하게 해준다.

이런 면에서 굳이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니어도 호랑가시나무는 여러 가지로 좋을 듯하다.

제주에서 호랑가시나무는 해안가에서부터 자라기 시작한다. 특히 제주 서부지역은 호랑가시나무의 주요 분포지역으로 예상되는데 한림, 무릉, 저지, 신평, 안덕계곡 등 다양하게 자라고 있다.

반면 제주시 동부지역에는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에 호랑가시나무가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곳의 습지, 계곡주변 등에 해발 약 150m 정도까지 자라고 있으며 아마 과거에는 지금보다는 더 넓고 큰 규모의 자생지들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호랑가시나무는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하며, 국내에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도서나 해안지역에만 분포가 확인되고 있다. 변산반도의 자생지는 식물지리학적인 특성과 가치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으며, 완도의 개체들은 유사종류들과의 교잡종으로 분류돼 완도호랑가시나무로 명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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