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행복한 우리학교] 5. 일도초등학교
한 달 책 한권, 읽고 쓰고 말하는 연습
타인과의 관계서 꼭 필요한 능력 키우는 과정
‘배움터지킴이’ 든든한 경비실
전국 최초 정규 교육과정 속 일본어수&

근대경험의 선구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말했다. ‘독서는 완성된 사람을 만들고, 담론은 재치 있는 사람을 만들고, 필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

모두 독서의 중요성을 표현한 말들이다.

독서는 책 읽기를 통해 습득하는 지식의 ‘섭취’ 정도를 떠나, 차분히 앉아 문자를 읽고 이해하고 상상하는 활동 자체로서 집중력과 이해력, 기억력을 키우고 뇌 기능을 활성화한다. 여기에 독서를 통해 접하는 다양한 어휘와 폭넓은 분야의 지혜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의 흡수 속도를 증폭시킨다.

‘손 안의 컴퓨터’로 언제 어디서나 궁금증을 즉각 해결할 수 있는 지금 이 시대에도 교육자들이 독서의 중요성을 ‘클래식하게’ 강조하는 까닭이다.
 

▲ 일도초등학교 2~4학년 학생들이 학교소식이 신문에 실린다는 소식에 한껏 들뜬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기호 기자
▲ 2010년 하토야마 일본총리 부인인 미유키 여사가 일도초등학교 일본어 수업애 참관해 학생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일도초 제공

◇책으로 사회성 키우기

2013년부터 2년간 제주형 자율학교로 지정된 제주일도초등학교(교장 고운진)는 특성화 교육과정으로 독서교육을 선택했다.

외국어, 스포츠 활동, 악기 연주 등 아이들의 끼와 재능을 키워주기 위한 다양한 특색활동 가운데 일도초 교사들이 하필 진부하다면 진부한 ‘독서교육’에 방점을 찍은 것은, 잘 들인 독서습관이 아이들의 향후 학교생활을 좌우할 만큼 인성적으로나 학업 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일도초의 독서수업은 책을 읽고, 관련 소재에 대해 사회적 지식을 조사한 뒤, 자신의 주장을 한 편의 글로 정리하고, 다 같이 토론하는 네 단계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 봄 6학년 학생들은 ‘안내견 탄실이’를 읽었다. 화가의 꿈을 키워가던 주인공 ‘예나’가 갑자기 시력을 잃고 절망 속에 지내다 안내견 ‘탄실이’를 만나면서 다시 희망을 얻는다는 이야기다.

학생들은 책을 통해 장애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그 절실함에 비해 미미하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 세상을 살아가는 따뜻한 지혜 하나도 알게 됐다. 

6학년 학생들은 이런 방식으로 올 한해 ‘열두 달 명절이야기’ ‘톰 아저씨의 오두막’ 등 모두 9권의 책을 읽었고 아홉 권의 책의 깊이만큼 성장했다.

문복실 교감은 일도초의 독서교육에 대해 “지식을 얻고 지혜를 나누고 내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며 상대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여러 가지 능력들을 배우게 된다.”고 설명했다.

◇독서가 ‘습관’될 때 아이들은 성장

일도초가 독서교육과 관련해 관심을 두는 또 하나의 방점은 ‘습관 만들어주기’이다.

전교생들은 매일 아침 20분씩 책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고학년 독서동아리 학생들은 일정한 주기마다 저학년 교실을 찾아 동생들에게 직접 책을 읽어준다. 교사들이 책으로 지도할 때보다 몰입도가 훨씬 높다.

1층 로비에 학교 도서관이 위치해있다는 점은 일도초 만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많은 학교들이 독서의 중요성을 아는 것과 별개로, 도서관을 접근성이 낮은 별관이나 위층에 설치하는 것과 대조된다.

학교 도서관에는 매일 학부모와 한 종교단체의 시니어클럽에서 나온 자원봉사자들이 상주하며 도서 대출반납 업무를 맡고 있다. 아이들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오가는 로비 한 쪽에서 매일 ‘도서 선생님’들이 온기를 지피고 있으니 학생들이 도무지 책과 멀어질 수가 없다.

일도초는 가정에서의 독서분위기 형성을 위해 학부모들에게도 도서 대출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지난 11월 열린 ‘자율학교 축제’에서는 올 한해 책을 가장 많이 읽은 학부모 3명을 선정해 시상하기도 했다.

여기에 고운진 교장은 최근 다섯 번째 창작동화집(‘도토리묵’)을 발간한 20년 공력의 동화작가이기도 하다.

▲ 일도초 고운진 교장

◇안전이 최고

구도심 주택가 한 가운데 자리한 일도초는 어느 학교보다 아이들의 안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정문에 경비실이 설치된 몇 안 되는 학교 중 한 곳이기도 하다.

담이 없고 운동장에 시민들이 쓸 수 있는 체육시설이 다수 설치됐다는 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공공시설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학교 측의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위험요소의 접근이 쉽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일도초는 ‘배움터 지킴이’의 시선이 학교 전체에 닿을 수 있도록 정문 입구에 경비실을 설치하고, 더불어 배움터 지킴이에게 제복을 선물해 더 큰 책임감을 심어주었다. 그래서일까. 이 곳 배움터 지킴이 김용규씨는 타 학교 배움터지킴이의 근무시간보다 2시간이나 더 늦은 오후 5시 30분까지 학교에 남아 아이들의 늦은 하교를 지켜주고 있다. 

여기에, 문복실 교감을 비롯한 교사들은 학교 안까지 들어와 자녀를 내려주는 차량과 등교하는 아이들이 한 데 뒤섞이는 위험한 아침 등교 풍경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3개월간 때 아닌 ‘불침번’을 섰다. 갑작스런 통제에 당황해하던 학부모들도 계도 3개월이 넘어가자 정문 밖 정차를 습관화하게 됐다. 기약 없던 노력이 질서를 만든 셈. 아이들의 안전을 생각하는 교사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전국 유일의 일본어 수업

일도초하면, 전국 유일의 일본어 교육도 자랑거리로 빼놓을 수 없다.
2009년 제주형 자율학교로 처음 지정되며 전교생을 대상으로 시작한 일본어 교육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어가 ‘붐’을 이루는 가운데 정규 교육과정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곳은 전국 초등학교 중 일도초가 유일하다.

이런 이유로 2010년에는 한일정상회담차 제주를 방문했던 일본 하토야마 총리 부인 하토야마 미유키 여사가 일도초를 찾아 수업에 참관했고, 같은 해 요덴 유키오 일본 총영사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또 지난해에는 지속적으로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가르쳐온 공로로 일본 공익재단법인 일한문화교류기금의 제14회 일한문화교류기금상 단체부문 수상자로 결정됐다. 

일도초는 2015년 2차 제주형 자율학교 기간이 끝난 뒤에도 계속 일본어 수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다문화교육은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만큼, 대세 언어(중국어)를 굳이 좇아갈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 고운진 교장이 최근 발간한 창작동화집 '도토리묵'의 표지

◇심성 고운 아이들이 자라는 곳

고운진 교장은 지난달 동화집 ‘도토리묵’을 발간하며 서두에 이런 문장을 실었다.

“이 책에는 냉철한 이성과 논리적인 힘을 길러주는 얘기는 들어있지 않다. 전자책과 스마트기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지혜도 들어있지 않다. 대신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멋진 우리 아이들 이야기와 아름다운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에 가슴 뭉클한 이야기…조금은 어리석은 듯 하고 바보 같지만 사랑과 나눔 배려를 최고의 덕목으로 살아가는 심성이 고운 친구 용배(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아이들은 책을 손에 쥔 채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학교. 그리고 그 속에서 토론을 통해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워가는 지금 일도초 아이들의 모습은, 어쩐지 고 교장이 이번 동화집에 담고자 했던 세상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 보인다.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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