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신 연구사의 제주 식물 이야기
③곶자왈에 사는 제주고사리삼

▲ 제주고사리삼의 자생지인 곶자왈 숲. 이들은 소택지에서만 자라며 그 습지도 물이 잘 빠지는 습지이어야 생육이 가능하다.

제주를 상징하는 것은 많다. 돌하르방, 한라산, 해녀, 삼다(三多) 등 유·무형의 상징들이 있다. 특히 제주도는 예로부터 ‘식물의 보고’라 불리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한 식물상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으로 인식돼 있다.

제주도의 식물은 한반도를 비롯한 대륙에서 유래하는 북방계 식물과 아열대나 열대가 기원인 식물 등 기원도 다양하며, 도서지역이라는 특성상 지금도 매년 새로운 식물들이 새롭게 보고되고 있다.

세상에 처음 알려진 새로운 식물종

제주도 식물 중에는 학술적 가치를 지닌 고유식물(특산식물)이나, 지역문화와의 연관성을 가진 향토식물이 많다. 대표적인 희귀식물 중 하나인 북방계식물 돌매화나무(암매)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식물로 자리잡은 구상나무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봄을 상징하는 왕벚나무는 원 자생지가 제주도로, 위상과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백록담에서만 관찰되는 한라솜다리, 중산간의 넓은 방목지와 하천변에서 자라는 제주상사화 등 한라와 제주가 들어간 고유식물도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알려진 양치식물(羊齒植物)이 있어 눈길을 끈다. 그것은 바로 곶자왈에서 자라는 ‘제주고사리삼’이다. 아직 일반 대중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주를 상징할 수 있을 정도의 식물학적 가치와 의미를 충분하게 가지고 있어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관심이 높은 식물이다.

2001년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진 제주고사리삼은 고사리의 한 종류로, 종보다 한 단계 높은 새로운 속(屬)으로 등록됐다. 새로운 식물종을 등록하면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학명도 새롭게 만들어지는데, 제주고사리삼의 학명은 'Mankyua chejuense(만규아 제주엔세)'다.

만규아는 국내 저명 양치식물학자인 박만규 교수의 이름을, 제주엔세는 제주가 원산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식물분류학적으로 볼 때 제주고사리삼은 속수준의 고유식물로, 국내에서는 속 수준에서 고유식물은 아주 드문 경우로 현재까지 모데미풀속 등 6-7개 정도 밖에 없다. 한국인 학자의 이름을 쓴 경우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제주고사리삼과 유사한 종류(Helminthostachys)는 현재 아열대나 열대에 자라고 있다. 현재의 제주고사리삼 자생지가 곶자왈 용암지대인 것으로 볼 때, 아주 오래전 열대나 아열대 지역에서 육지와 연결된 제주지역까지 북상해온 제주고사리삼의 조상격인 식물들이 빙하기 등으로 더 이상 북상을 못하게 돼 지금의 위치에서 현재의 종으로 분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진화나 이동의 과정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부분은 없다. 그렇지만 제주고사리삼의 제주분포는 지질시대부터 지구과학적인 과정들이 모두 얽혀져 있어 매우 흥미로운 사항임에는 분명하다. 작게는 제주도 지질사나 남방계식물의 기원을 밝힐 단서가 될 뿐만 아니라 크게는 전 세계 하등식물의 진화에 관한 중요한 키를 가진 것이다.

생활방식 일반 식물과는 정반대

이런 지구과학적인 얘기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은 지금 곶자왈 숲에서 제주고사리삼이 살아가는 환경이다. 용암지형인 곶자왈 숲에서 주로 자라지만, 그 산림 내에서도 소택지(저습지)에만 자라며, 그 습지도 비교적 물이 잘 빠지는 습지이어야 생육이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그냥 습지에 물만 있으면 자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봄이나 장마철에 비가 많이 내려 빗물이 일시적으로만 고여 있다가 서서히 빠져버리는 습지에만 산다는 것이다. 물론 제주고사리삼이 수생식물은 아니다. 이러한 습지는 제주고사리삼이 오랜 세월 살아남게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습지라는 환경은 식물종의 분포를 제한할 수 있는데, 즉 수생이나 습지식물처럼 물에 적응할 수 있는 종류들로 한정할 수 있어 다른 식물들의 접근을 제한 할 수 있어 주변으로부터 영양공급이 원활한 장점도 있다. 어쩌면 이처럼 복잡하고 까다로운 조건이 충족될 수 있는 곶자왈 같은 지형이 있어 가능한 일이라 할 수도 있는데, 특이한 지형이 있어 독특한 식물이 자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 제주고사리삼은 고사리의 한 종류로 포자번식 대신 뿌리줄기를 이용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톡특한 번식방법을 갖고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생활방식과 번식방법이다. 제주고사리삼 자생지는 앞서 말한 것처럼 소택지이다. 이 소택지에는 참느릅나무 같은 낙엽활엽수가 자라고 있어 하절기 동안은 음지가 되며, 반대로 늦가을부터는 양지로 변하는데 이때부터 고사리삼의 한해살이가 시작되며, 이듬해 한 여름이 되기 전에 생육주기를 마친다.

▲ 제주고사리삼 접사

어쩌면 일반적인 식물과는 반대로의 삶을 살고 있어 흥미로우며, 오랜 세월에 걸친 적응방식이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고사리 종류가 포자번식을 주로 하는데 반해, 제주고사리삼은 거의 근경번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땅속에 있는 뿌리줄기가 뻗어나가면서 영역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아주 한정된 자생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지만 장기적으로 이러한 방식은 다양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 좀 걱정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쩌면 제일 늦둥이로 밝혀진 식물인데 제주도의 대표식물 처럼 표현하는 것이 다소 무리가 있는 부분도 사실이다. 한 식물이 어떤 지역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문화적측면도 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이 식물의 역사적인 관련성이나 이름 등의 기원 그리고 전통적인 이용 같은 활용돼온 사례 등 이런 부분들이 어느 정도는 관련성이 있어야 보다 확고한 대표성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제주고사리삼의 역사성이나 제주도와의 관련성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가 중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식물이 가지는 식물학적인 가치는 충분하기 때문에 지구환경 변화의 상징같은 캐릭터의 개발이나 곶자왈이나 습지 등 환경과 연계된 에코상품의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용할 수 있는 노력들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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