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다른 듯 같은 이야기 < 2 >
조미영 작가의 베네수엘라를 가다

▲ 내셔널 빤데온의 전경. 과거 교회건물이었으나 지진으로 폐허가 된 것을 보수하여 독립기념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 카라카스 공항을 빠져나와서 만나는 첫 풍경. 원주민과 아프리카 이주민, 그리고 스페인혈통의 사람들이 섞여 지금의 베네수엘라 주민을 구성한다.
▲ 원주민은 더 이상 열등민족이 아닌 그들의 뿌리이다. 그들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기념품까지 등장하며 전통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우기가 막 끝나고 건기로 들어서는 시점의 후텁지근한 공기와 첫 대면을 하며 공항을 빠져나왔다. 건장한 체구에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람들, 조금은 무뚝뚝한 모습이다. 하지만, 인사를 하거나 카메라를 들이대면 금세 ‘씨익’ 웃으며 하얀 이를 드러낸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인종구성은 다양하다. 원주민과 노예로 끌려왔던 아프리카인 그리고 스페인 점령기의 백인들이 서로 혈통이 섞이며 피부색은 물론 체형 등의 외모와 성향이 각양각색이다. 이 같은 그들의 모습이 곧 역사를 대변하는 듯하다.

원주민들의 땅은 1498년 콜럼버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며 더 이상 그들이 주인일 수 없었다. 스페인 왕국의 식민지배하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한낮 소작농으로 전락한다. 더욱이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던 스페인 영주들은 아프리카에서 신체 건강한 남녀를 데려와 노예로 삼으며 각종 물자를 수탈한다. 이렇게 시작된 수탈과 저항의 역사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 유해를 모셔올 수 없는 경우에는 그들의 고향에서 흙을 담아와 나무상자나 항아리에 모셔놓는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위치한 ‘내셔널 빤데온’은 이 같은 항쟁의 역사를 기록한 독립기념관이다. 이곳에는 142명의 독립 운동가가 모셔져 있다. 그분들의 동상과 함께 유해를 모셔놓거나 부득이 유해를 모셔올 수 없는 경우는 고향의 흙을 항아리나 상자에 담아 놓는다.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이루기까지 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음을 알 게 해주는 곳이다. 그 외에도 5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으며 토지개혁을 이뤄내고 1854년 노예해방을 통해 더 이상 이 땅의 어린이들이 누군가의 소유가 되지 못하도록 했던 역사들이 기록되어 있다.

원래 이곳은 교회였다. 한때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방치되었던 곳을 수리하여 국가기념관으로 사용하다가 이후 독립기념관으로 성격을 바꿨다. 이는 그저 흘러간 역사를 나열식으로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를 통해 뼈아픈 독립의 과정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역사는 이후에도 그리 순탄치 않았다. 근세기 들어 고메스 장기 독재정권과 여러 번의 군사 쿠데타를 겪으며 정치적 불안이 지속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찾을 겨를도 안정적인 경제생활도 할 수 없었다. 강대국들의 입김에 휘둘리는 나약한 존재로 전락하였다. 그 몫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피해로 돌아갔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변화가 진행 중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알기시작하며 무엇을 어떻게 되돌려놔야 하는 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잊었던 전통들 그리고 자신의 땅에서 수확하고 캐내는 것들에 대한 주인이 바로 자신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 하나씩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그 혜택들을 찾아가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가능했던 것은 석유자원의 일부를 공유화하며 얻어진 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앞으로 그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달라질 것이다. <글·사진 조미영>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