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신 연구사의 제주식물이야기
<23>굴거리나무

▲ 굴거리나무 수꽃(왼쪽)과 암꽃

지난 몇 일간 혹독한 한파로 인해 제주지역이 잔뜩 움츠려 들었다. 힘들었던 것도 있었지만, 편리하게만 누려왔던 모든 일상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느끼게 해준 시기였다. 이런 사람들의 혼란에 비하여 식물들은 정말 차분하게 대처하는 것 같아 대조적이다. 이런 차이는 어쩌면 아주 단순한 것에 그 답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누가 더 환경에 적응하고 잘 대처하느냐 하는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발고도 높은 곳서 생육

이상기후나 기상이변 등으로 사람의 일상도 힘들지만 식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차피 식물도 계절변화에 반응하며 겨울눈 속에 숨겨둔 잎을 펴고 꽃도 피우고 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자라는 대부분의 식물들이 그렇지만 특히 상록활엽수에게는 더욱 이 계절이 혹독할 것이다. 이 시기가 되면 잎은 아래로 쳐져 있는 경우가 많으며, 녹나무처럼 가혹한 추위와 강풍에 잎을 떨어뜨려 견디기도 하며, 아직은 제주의 환경에 적응이 덜 된 일부 외국산 종들은 동해 피해를 입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한라산천연보호구역을 관통하는 도로를 지나치면서 흔하게 보는 나무 중에는 굴거리나무(Daphniphyllum macropodum)가 있다. 관목류이면서 상록활엽수로 가을까지는 그 존재감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 특히 겨울에는 숲속에서 가장 눈에 잘 들어오는 나무이다. 한겨울 눈 속에서 상록성인 나무가 큰 잎을 밑으로 쭉 늘어트려 자라고 있어 더욱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다. 볼 때 마다 왜 이리 높은 곳 까지 올라와 혹독함은 다 겪고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겨울 눈 속에 초록색 두터운 갑옷을 두른 나무처럼 또 씩씩하다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그렇지만 굴거리나무의 매력은 아무래도 이런 겨울을 이겨내는 모습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굴거리나무는 제주도를 비롯하여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충청남도 안면도, 전북의 내장산, 울릉도 등에 분포하고 있다. 전라북도 정읍에는 천연기념물(제91)호로 지정된 경우도 있다. 이 나무의 특징은 아무래도 소형나무인 꽝꽝나무나 만병초같이 고산지역이 자생지인 종들을 제외하면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까지 자라고 있는 상록성인 나무라는 점이다. 그래서 환경부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라서 내륙으로의 북상이 예상되는 “기후변화 생물지표 100종”에 선정한 바 있다. 한라산에서도 낙엽활엽수림이 형성된 대부분 지역에서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해발 약 1200m 부근까지 분포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 굴거리나무 열매

■열매 녹색에서 검정색으로 변화

굴거리나무는 이전까지 대극과(科)의 식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 굴거리나무과(科)로 바뀌었다. 남해안지역에서는 “국활나무” 로 부르는 지역도 있으며, 그 외로 지역에 따라 "만병초", "청대동" 등으로도 부르기도 한다. 학명 중 속명 “Daphniphyllum” 은 월계수나무(daphe)의 그리스 고명(古名)과 잎(phyllon)의 합성어이다.

암수한그루로 알려진 경우도 종종 있지만, 실제로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나무이다. 한라산의 낙엽활엽수림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로 이런 종류들이 다 그렇듯이 암나무의 개체보다는 수나무개체가 많은 편이다. 대체로 저지대에 식재된 개체들은 4월초부터 꽃을 피우기시작하지만, 한라산에서는 4월말에서 5월초에 꽃이 핀다. 숲 속에 자라는 경우가 많아 결실기 외에는 암나무와 수나무를 구분하기 어려운 편이다. 가지의 끝부분에서 관찰되는 암꽃은 꽃잎이 없이 암술머리는 2개로 갈라져 뒤로 젖혀지며 붉은색이고, 수꽃은 수술은 7~9개이고 밑부분이 서로 붙어 있으며 꽃밥은 자갈색으로 차이가 있다. 꽃이 눈에 확 들어올 정도의 매력은 없는 편이지만, 풍성하게 달리는 열매는 다소 긴 타원형으로 녹색에서 점차 검정색으로 변화하며 익는 특징이 있다.

▲ 좀굴거리나무

굴거리나무와 유사한 종류로는 같은 굴거리나무속(屬)에 좀굴거리나무(D. reijsmanni)가 있다. 좀굴거리나무는 제주지역에 많이 자라고 전남 대둔산에도 분포한다. 굴거리나무보다 잎은 조금 작게 느껴지며, 뒷면이 회녹색을 띠고 잎맥이 뒷면으로 뚜렷하게 돌출하며, 암꽃의 암술머리가 붉은색이고 수꽃의 밑 부분에 꽃받침조각이 없는 점이 차이가 있다. 두 나무는 자라는 지역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는데, 굴거리나무가 주로 온대낙엽활엽수림에서 자라는 반면, 좀굴거리나무는 제주도의 도서지역이나 난대활엽수림지역에 주로 자라는 특징이 있다.

주로 남부지방에만 자라고 있어 굴거리나무의 용도는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전라도 및 충정도 지역에서는 굴거리나무의 잎과 수피를 끓여 구충제로 사용했다는 사례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근래에는 상록성이면서 추위에도 강한 편이라 조경수로의 이용이 많은 나무이고, 앞으로도 많이 이용될 수 있는 수종으로 보아진다.

식물이 내한성을 가지는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시원스럽게 밝혀진 부분은 없지만, 그 시작은 기본단위인 세포의 세포벽에서부터 준비가 시작되며, 줄기, 잎 등 조직의 대비책을 만들어내는 근간이 되고 전체적인 대응 능력을 가지게 된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일도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빈틈없는 대비 및 대응책은 개인이나 가족 등 작은 단위에서부터 시작이 될 것이며, 이런 기초가 모여지고 줄기처럼 여러 기관을 이어주는 유기적인 시스템이 있어 위기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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