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률의 유럽을 닮은 아프리카, 튀니지를 가다]
<3> 고대도시 두가(Dougga)에서 로마를 느끼다

▲ 두가는 고대 로마시대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 두가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고대 로마시대의 도로
고대 로마도시의 웅장함에 매료되어 두가(Dougga)에는 두 번 다녀왔다. 한번은 혼자, 또 한 번은 아내가 튀니지에 방문했을 때다. ‘두가’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북아프리카의 로마유적지 중 하나로, 수도 투니스에서 서남쪽으로 12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로마유적지 '두가'
지금도 국제 페스티벌이 열리는 로마시대 원형극장
수세식 공중화장실과 공중목욕탕…‘물의 문화’ 실감
 
▲ 테베르숙 마을
두가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아침 8시, 뱁사둔(BabSaadoun)에 있는 버스터미널(튀니지의 교통은 다음에 연재)에서 르와지라는 8인승 소형버스를 타고 테베르숙(Tebersouk)행 버스에 올랐다. 고속도로를 타고 2시간 만에 도착한 ‘테베르숙’은 조그만 마을이었다.
 
튀니지에서는 낮 시간에 젊은 남자들이 노상카페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이유는 실업률이 높기 때문이라 한다. 여기서 두가까지는 6km를 더 가야한다. 세계문화유산임에도 대중교통편이 아예 없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돌아오는 시간은 택시기사와 반드시 미리 약속해 두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테베르숙까지 되돌아올 방법이 없다.

 
▲ 두가에는 유피테르 신전(사진)을 포함해 12개의 신전이 있다.
▲ 야외극장. 이 곳에서는 지금도 국제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 '알렉산더 세베루스의 문(Arch of Alexander Severus)'
▲ 물을 저장했던 저수조. 이 곳의 물은 공중 목욕탕과 수세식 공중 화장실에 쓰였다.
▲ 반달리즘으로 사라진 도시

두가는 로마시대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유적지다. 기원전 2세기경, 로마 제국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누미디아 왕국(Numidia)’의 옛 도시이기도 하다. 누미디아 왕국은 지금의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일부를 지배하던 고대 북아프리카의 왕국이었다.
 
카르타고가 지중해에 있는 해양 도시국가였다면 누미디아 왕국은 농경을 중심으로 평야에 있었던, 당시 지중해 일대에서 가장 번성하고 강력한 국가들 중 하나였다고 한다. 카르타고와 로마의 제2차 포에니전쟁 때 로마의 편을 들면서 번성하다가 로마의 속주가 되면서 두가는 로마의 도시가 되었다. 그 후 비잔틴(동로마제국), 반달족, 페르시아,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차례대로 거쳤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로마유적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고대 도시 두가는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 ‘로마인 이야기’에도 여러 차례 언급되듯 로마의 곡물저장소라고 말 할 정도로 비옥한 땅이 펼쳐지는 곡창지대였다. 때문에 로마가 군을 주둔시켰던, 당시 지역행정의 중심지였다.

두가는 고대 로마를 멸망시킨 반달족(지금의 게르만족의 선조)의 침입으로 황폐화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사라진다. 반달리즘(vandalism)은 반달족들이 로마의 문화를 파괴하던 것에서 비롯된 말로 문화예술 파괴행위를 뜻한다. 반달족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있던 5세기 중엽 로마를 침공해 로마 곳곳의 문화재들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이곳 북아프리카의 튀니지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 너무나 아쉽다.
 
두가는 테베르숙 산맥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튀니지의 곡창지대인 비옥한 밀 재배지역으로서 사람들이 식량걱정 없이 살기에 좋은 곳이다.
 
▲ 역사의 시계가 멈추다

두가의 도시중앙에는 바람의 광장이 있고 기원 후 166년에 세워진 주피터 신전, 타니트 신전, 유피테르 신전 등 12개의 신전과 시장, 목욕탕, 극장, 경기장이 있다.
 
기원 후 188년에 건설된 3500석 규모의 원형극장은 여러 나라에 있는 고대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중에서 모습을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에서 7월과 8월에는 국제페스티벌이 열린다.
 
주피터 신전에는 안토니우스 피우스(Antonius Pius) 황제를 묘사한 조각이 있다. 안에 있었던 거대한 주피터 신의 조각상은 현재 투니스의 바르도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로마의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다 보니 전혀 다른 건축 양식으로 세워진 거대한 3층 석탑이 있다. 이 탑은 기원전 2세기에 이곳을 통치했던 누미디아 왕국의 마시니사(Masinissa) 왕의 영묘라고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 이 말은 17세기의 프랑스 작가 라 퐁텐의 ‘우화’에 맨 처음 나온 말이다. 나는 이 곳에서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두가에서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정교한 포장도로를 볼 수 있었는데 이 도로는 투니스의 카르타고에서 알제리까지 이어졌던 도로라고 한다. 222~235년에 세워진 로마 황제의 ‘알렉산더 세베루스의 문(Arch of Alexander Severus)’ 역시 지금도 원형 그대로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수많은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더불어 두가는 산악지대에 있는 도시였는데도 수세식 공중화장실과 공중목욕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물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저장했던 저수조를 보면 고대 로마의 문화는 물의 문화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나는 어린아이 속살처럼 너무 맑고 고운 두가의 하늘을 보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로마가 지배했던 누미디아 왕국 도시에 온 것 같은 설렘과 착각을 느꼈다. 마치 이 곳에만 역사의 시간이 멈춘 듯 했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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