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석 박사의 제주지질 이야기
<22>세계자연유산 등재 10년

▲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세계자연유산센터 외형은 화려하나 내부의 관리본부는 계속된 기구축소 등으로 존폐의 위기를 맞고 있다.

▲2007년 7월 2일 제주도 세계자연유산 등재

지난 몇 년간 제주의 가치는 부쩍 높아졌다. 그 가치의 중심에는 제주의 자연환경이 큰 몫을 차지한다. 내년이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지 십년이 된다. 그동안 이를 홍보하며 제주를 알렸는데 과연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점검 할 시점이 되었다.

우선, 지정 당시 유네스코와의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이를 위해 지난 9년간 도청에서는 무슨 일을 했는지? 무엇보다도 도민들의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는 얻어졌는지?” 그간의 걸음걸이를 반추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상했던 대부분의 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차마 지금 이 지면에서는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울 지경이다.

당시 도지사는 세계자연유산 사업에 모든 역량을 쏟았다. 획기적으로 세계자연유산 관리본부를 신설하고 국장급의 3급 부이사관을 본부장으로 발령하는 조직을 설치함은 물론 문화재 분야의 예산 대부분을 쏟아 부으며 세계자연유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방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유산본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실정이다. 현재 본부장은 4급 서기관으로 격하된 지 오래됐고 도청 공무원들은 유산센터 근무를 원하지 않는다. 전입 기피 부서로 전락해 있다고 한다. 완전히 활력을 잃었다. 곧 시행될 도청 조직개편에 따르면 또다시 유산본부는 축소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애초에 일의 시작에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결과는 애초부터 예견된 것이다.

당시 도지사는 정치적으로 입지가 곤란한 상태였다. 강정해군기지 문제로 주민소환 투표까지 실시되는 시점이었다. 도민들의 눈을 다른 데로 돌려야만 했다. 그 대안이 바로 세계자연유산 등재 사업이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뒤를 이은 도지사가 앞서 이뤄 놓은 성공적인(?) 세계자연유산 사업을 본받아서 이와 비슷한 세계적인 인증 사업에 올인 한다. 모두에게 기억도 새로운 세계7대경관 사업이다. 국제전화로 해야 하는 투표를 반강제적으로 해야했다.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당시 우리는 도내 모든 행사 시작 전에 휴대폰을 꺼내들고 사회자의 구령에 맞춰 전화번호를 눌러야만 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도민들의 주머니 돈까지 모금하며 수백억을 들여 이룩한 이 사업이 과연 현재 제주도를 발전시키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지금 다시 묻고 싶다. 진정성이 없는 이런 허접한 일들을 정책이라고 과거 도백들은 아무런 고민과 협의 없이 추진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한데, 중요한 것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07년 유네스코가 제주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의 권고사항이 첨부된다. 권고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이렇게 했으면 하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권고사항은 단지 권고일 뿐, 반드시 이행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청에서는 이것을 잘못 해석하여 충실하게 모든 사항을 과도하게 이행중이다. 권고사항에는 유산지구내 사유지 매입이 있다. 그래서 매년 수백억 원을 들여 거문오름과 만장굴 사이의 토지를 거의 매입했다. 문화재 관련 예산을 모두 여기에 쏟아 부었다. 그것도 모자라 최근 들어서는 강제수용에 나서고 있다. 타당하지 않으며 불법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상태에서 개인의 재산권을 강제할 수는 없다.

▲관광객 유치 호들갑 ‘유네스코 정신’ 위반

둘째, 많은 관광객의 효율적 관리와 상업 활동의 제한이다. 후진국형의 관광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제주도청에서는 거꾸로 세계유산 등재에 따른 관광객 유치를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반대로 유네스코에서는 인류의 후손을 위하여 남겨두어야 할 세계적인 유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관광객을 줄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오히려 많은 관광객의 유치를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성산일출봉 방문자수가 300만 명을 넘었다고 자랑하고 있다. 이는 유네스코 정신 위반이고 약속을 파기하는 일이다.

반면, 일본 북해도 동쪽 끝에 위치한 시레토코는 작은 어촌 마을인데, 유네스코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할 당시 주민들의 한 목소리로 요구한 것이 있다. 만약 우리 마을이 세계유산이 되면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유산이 훼손될 가능성 때문에 등재를 반대했다. 이것이 선진국형의 세계유산과 관광에 대한 의식이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성산지역의 상권 관리는 아예 손도 못 대고 있다.

또 다른 권고사항에는 지정된 것 이외에 중요한 용암동굴계나 화산적 특징을 가진 것이 있다면 추가지정을 권고 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특정지역의 동굴에만 치우치고 있다. 이는 학술용역 대부분을 특정인에게만 주어지고 있는 사실과 관련 깊다. 선흘리 거문오름 분화구에서 유출된 용암류가 바다쪽으로 수십 킬로미터를 흐르며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굴, 당처물굴을 일직선상에 만들었다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이론에 대해 지금 제주의 지질학 전공자들은 동의하지 않고 있다. 제주에는 이 곳 이외의 동굴과 화산적 특징을 가진 오름, 곶자왈이 있다. 이에 대한 다각적인 조사를 통해 세계사연유산의 가치를 폭넓게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최근 학술용역 결과 제시된 다섯 곳의 추가 등재지는 거문오름 상류동굴군, 소천굴, 수월봉, 차귀도, 용머리해안이다. 혹 중요한 지질유산을 추가로 등재한다고 하면 학술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이곳들 보다는 경관과 생태적 가치를 겸비한 비양도와 같은 화산섬이나 오름군, 동백동산과 같은 곶자왈을 포함하는 게 우선이다. 용암동굴은 빌레못동굴과 신공항 예정지의 수산굴을 추천한다. 수성화산은 송악산과 사람발자국 화석이 학술적 가치가 훨씬 높다.

또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2008년에 장기적인 관리 계획에 대하여 용역을 실시한다. 일명 ‘2020 계획’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수행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세계자연유산 보존 및 활용을 위한 10대 선도 사업이 있다. 예를 들어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관리로 학술 연구를 위하여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사업비 15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내용 등이다. 목표연도가 지난 지금 한라산 연구에 단 한 푼의 예산도 투입되지 않았고 연구 사례는 전무하다. 비공개 동굴의 간접 체험기반 조성으로 용천동굴, 당처물굴에 3D, 4D 영상관을 설치하는데 2012년부터 2015년까지 210억원을 민자유치 포함하여 조성한다는 내용도 있다. 목표연도 2015년이 지난 지금, 사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예 사업계획도 없다고 한다.

▲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일출봉 항공 사진.

▲일출봉주차장·유산운영재단·3D 영화관 ‘말만’

성산일출봉 주차장 이전 사업으로 주차장을 이전하고 테마 보행로, 차 없는 거리 설치로 기존 상업시설의 철거도 제시되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계획으로 사업비 66억 5천만원이 투입된다고 했다. 확인 결과, 사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차장은 이전되지 않았고 현재 늘어나는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대형버스와 렌터카로 성산포는 혼잡하다. 성산 마을을 차 없는 거리로 조성하여 유산과 연계한 관광지로 조성되지 않았으며, 주차장내 상업시설조차 철거되지 않고 있다. 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는 것일까.

더구나 세계자연유산운영재단 설립(2010-2020년)은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관리기구가 필요하며 기금 모금 사업도 추진하여 174억 9천만원의 사업비로 추진한다고 했다. 이 사업은 유네스코의 특성을 반영하고 화산지질학 전문가들의 연구 인력으로 유산을 관리하겠다는 아주 타당한 계획이다. 그런데 현재의 실정은 어떤가? 유산본부에는 지질연구원이 고작 2명이다. 반면 본부장을 비롯한 수 십 명의 직원은 모두 도청 공무원이다. 행정직 공무원들의 또 다른 자리 만들기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 아마 도청에서는 진정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리와 보존을 위한 재단을 설립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유일하게 완료된 사업이 하나 있다. 거문오름에 세계자연유산센터를 건립했다. 토목사업이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이를 채우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걸 누구나 알고는 있는데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관심은 없고 그저 제 밥그릇 챙기는 데만 여념이 없다. 과연 세계자연유산 사업이 제 갈 길을 찾을 수 있을지 심히 걱정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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