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카르타고의 군항
큰 호수같은 바다, 카르타지해양박물관 옆에 위치
상업 항구는 지중해 밖으로, 군항으로 안에 숨겨

▲ 지금은 어렴풋이 흔적만 남아있는 카르타고 군항
▲ 카르타고 군항

신전 토펫(Tophet, 7월5일자 ‘왕국 번영 위해 갓난아이 신에게 바쳤던 장소’ 참고)에서 나와 카르타고 군항(Carthage harbour) 유적지를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카르타지 항구가 가까운 카르타지 비르사역까지 기차를 타고 갈까하다가 토펫에서 오른쪽으로 쭉 걷다보면 카르타고 군항(Carthage harbour) 적지가 나온다기에 바다가 보이는 곳을 찾아 한참을 걸어갔는데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편집자주>

▲지중해에도 알려진 ‘한국’

마침 지나가는 청년에게 카르타고 군항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가던 길을 멈추고 카르타고 군항에 가는 길목까지 안내를 해줬다. 청년이 알려 준 방향으로 골목길을 걸어가는 데 눈앞에 큰 호수만 보이고 카르타고인들이 만들었다는 군항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어린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많은 자가용들이 주차되어 있고 곳이 보였다. 그곳이 카르타고 군항인줄 알고 갔더니 바다는 보이지 않고 ‘카르타지해양박물관(Musee Maritime de Carthage)’이라고 쓰여 있는 매표소가 보인다.

▲ 카르타지 해양박물관 앞에서 고병률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TGM역으로 가는 풍경

우연하게 발견한 해양박물관이라서 망설이다가 입장료가 얼마인지 들어보니 1디나르(600원)라고 한다. 가격이 너무 저렴해 호기심을 안고 들어갔다. 해양박물관은 부모들과 같이 견학 온 아이들로 가득했다. 관람을 하고 있는데 예쁘장한 어린 여학생 2명이 나에게 다가와서는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반가운 마음에 한국어를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한국드라마와 K-POP 때문에 틈틈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한국드라마 배우들과 K-POP 가수들에게 정부에서 훈장이라도 줘야 할 듯하다.

▲‘한국’의 힘으로 폐관시간 입소

튀니지해양박물관에서 나오면서 직원들에게 카르타고 군항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세상에 바로 옆 골목길 안을 가르킨다. 방금 보였던 호수는 호수가 아니고 바다였던 것이다. 내가 찾던 카르타고 군항 유적지 일부였다. 서둘러 달려갔더니 관람시간이 끝났다면서 관리인이 철문을 닫고 있었다. 5시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관람을 포기하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직원이 “너! 한국사람?”하면서 서투른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가슴에 달고 있는 튀니지와 태극기가 교차되어 있는 배지를 본 것이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더니 “나 태권도 유단자야!” “검정 띠야.” “지금도 태권도를 배우고 있어”하고 말을 걸어온다.

그러면서 지금 문 닫아야 하지만 자기가 책임자이니 30분 시간을 준다며 카르타고 군항을 보고 오라고 한다. 마음속으로 다음에 한 번 더 방문해야지 하고 생각하던 차에 구세주를 만난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세상에 이곳이 기원전 로마와 대항했던 카르타고의 항구라니'라고 혼자 중얼 거리며 역사 속으로 빠져 들었다.

▲ 당시의 카르타고의 군함 상상도
▲ 카르타고 박물관에 있는 카르타고 군항 조감도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군항

이곳 카르타고 군항에서 출발한 카르타고 함선들은 스페인, 그리스, 로마의 지중해를 지배했다. 군항을 감추기 위해 바다와 바로 연결되는 외항에는 상업 항구를 만들고, 밖에서는 보이지 않은 깊숙한 곳에는 군항을 만들었다고 한다. 상업항이 군항 앞을 가로막아서 바다 쪽에선 군항이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지금은 폐허가 됐지만 카르타고 박물관에서 본 조감도처럼 항구 흔적이 어렴풋이 보였다. 이곳에서 저 멀리 카르타고 왕궁 터인 비르사 언덕과 1270년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제8차 십자군을 이끌고 튀니지에 진군하던 중 사망한 자리에 1892년에 프랑스가 지은 세인트 루이스 성당도 보였다.

약속한 시간이 다되는 것 같아서 서둘러 나오는데 관람객은 아무도 없고 그 직원만 정문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인사를 했더니 수첩을 꺼내들면서 “1,2,3...과 하나, 둘, 셋...”을 발음해 달라고 한다. 태권도를 배울 때 외치는 구령을 정확히 알고 싶어 했는데 내가 와서 도리어 자기가 행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래막기, 몸통막기, 얼굴막기”를 외치면서 나에게 시범도 보여주었다.

나에게 한국적 마스코트라도 있으면 주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 해 아쉬웠다. 누군가 튀니지의 카르타고 군항 유적지를 방문 할 때 ‘키가 크고 늘씬한 젊은 남자 관리인’을 만나게 되면 한국을 상징하는 조그만 선물을 줬으면 좋겠다. 튀니지에 올 때 많은 양의 기념품을 준비하고 왔지만 이곳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니 지금은 다 떨어졌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외국을 여행을 할 때는 제주도의 상징인 돌하르방 열쇠고리 등을 많이 가지고 가면 큰 도움이 될 듯 싶다.

▲ 한니발의 로마 진격 루트
▲ 카르타고에 있는 집터들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음을 기약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인적이 없는 골목길을 나오면서 갑자기 한 달 전에 튀니지 테러가 떠오른다. 그래도 나는 오늘 아들이 태권도를 배운다는 살람보 역의 역무원, 살람보해양박물관에서 만난 한국어를 배우는 여학생 2명, 그리고 카르타고 군항 유적지의 관리인까지 세 번이나 한국을 사랑하는 친절한 튀니지 인을 만나는 행운을 만끽했다. 다시 한 번 더 이곳을 방문할 것을 기약하면서 서둘러서 어두운 골목길을 돌아 TGM 살람보 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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