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우티나(Uthina)

원주민 살던 소도시, 포에니전쟁 후에 로마인 정착
깊고 컴컴한 통로 들어가자 거대한 원형경기장이
1만5000명 규모, 45도로 기울어진 돌계단식 관중석 
로마 14대 황제 하드리아누스 건설 추정, 계속 발굴중

튀니지 최대 휴양도시 ‘수스’의 해변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테러가 발생한 이후, 한동안 혼자 여행하기가 두려웠다. 그러던 중에 튀니지국립도서관 직원이 바로셀로나 메트로 역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로마유적이 있는 ‘우티나(Uthina)’로 가는 마을버스가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항상 다니는 길로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다보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던 찰나였다. 얼씨구나. 토요일 이른 아침, 나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한 걸음에 달려갔다. <편집자주>

▲ 마을을 순회하는 마을 버스표
▲ 우티나 가는 도중에 본 시골마을
▲ 우티나 입구. 튀니지 국기가 보인다.

▲‘우티나’로 가는 길
마을버스가 있다는 것은 수도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뜻이다. 사실 우티나 로마유적지 여행은 처음이 아니다. 작년 4월에 튀니지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한국자문관과 같이 방문했었다.

그때는 ‘밥알리우와’에 있는 르와지 터미널에서 르와지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 뒤 다시 택시를 타고 유적지까지 가는데 거의 3시간정도 걸렸다. 만일 튀니지에서 우티나 유적지를 여행할 때는 르와지와 마을버스, 이 두 가지 방법이 있음을 염두에 두면 좋을 것 같다.

가서보니 바르셀로나 메트로 역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은 튀니스(튀니지의 수도) 근교에 있는 마을을 왕복하는 버스터미널과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었다. 바르셀로나 메트로 역은 내가 매일 내리고 타고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이곳이 시내버스 정거장인 줄만 알았지 인근 마을로 출발하는 마을버스 터미널 인줄은 전혀 몰랐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우티나로 가는 버스가 있는지 수소문하니 모두들 놀라워하면서 25번 버스를 타라고 한다. 10여분을 기다리니 25번 버스가 들어왔다. 버스에 올라타는데 버스기사가 웬 동양인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윈 배쉬 님시 엔티(어디에 가느냐)?”고 물어본다. 내가 “애나 은햅 임시 피 우티나 로만(나는 우티나에 있는 로마유적을 보러 간다).”고 말하자 이곳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우티나로 가는 외국인은 처음 본다면서 나에게 “어떻게 알았느냐?”며 아주 신기해한다.

▲정겨운 마을 사람들
내가 탄 25번 마을버스가 가는 길은 여러 마을을 보면서 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40여분을 달려 어느 한 마을에 도착하자 운전기사가 버스를 세우면서 다음이 버스 종점이지만 여기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종점에서 내리겠다고 망설이자 같이 버스를 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나흐벋(내리라)” “나흐벋” 하면서 여기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가라고 야단이다. 버스 종점에서 걸어서 갈 수도 있지만 걸어가기에는 좀 먼 거리라고 걱정들이다.

그 분들은 모두 이 동네 사람들일 것이다. 시골 버스라서 그런지 버스기사부터 모두들 느긋하고 친절하다. 같이 버스에 탄 할머니들도 관심을 안 갖는 척 하면서도 한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모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보니 조그만 하고 한적한 마을이다. 방향도 모르고 어디서 택시를 타야 할지도 몰라서 인근 가게에 들러 물었더니 이 동네에는 택시가 별로 없다며 바로 앞에서 타라고 한다. 다행이도 택시가 여기서 내리는 손님을 태우고 바로 왔다.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를 달리니 우티나 유적지다. 가까운 거리다. 요금이 3디나르(1,800원)가 나왔지만 5디나르(3,000원)을 주었다. 아주 좋아했다.

▲ 유적지에서 풀을 뜯어 먹는 양떼들
▲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관중석은 자연적 구릉지를 이용해 돌을 정교하게 깎아서 계단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제14대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117년~138년)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 우드나(Oudna) 또는 우티나(Uthina)라고도 하는 고대 로마도시.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광활한 구릉진 초원 위에 있다.
▲ 우티나(Uthina) 안내도
▲ 우티나(우두나) 안내 표지석

▲광활한 초원 위,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
매표소 입구는 무장 경찰관이 지키고 있었다. 수스에서 IS 테러가 발생한 후라서 관광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매표소에서 튀니지 거주증을 보였더니 한국인이 여기까지 왔다고 매우 반가워하며 그냥 들어가라고 한다. 작년에 이곳에서 한국영화가 촬영됐는데 그때 한국인들과 매우 정이 들었다고 한다.

이곳 지명은 우드나(Oudhna) 또는 우티나(Uthina)라고 한다. 수도 튀니스에서 남쪽으로 30km 지점,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광활한 구릉진 초원위에 있다.

원래 지명은 ‘아디스’로, 베르베르인들의 소도시였다고 한다. 우티나는 지중해 패권을 둘러싸고 기원전 264년에서 기원전 146년 사이에 로마와 카르타고가 벌인 세 차례의 포에니전쟁 이후 2~3세기경에 로마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다시 재건된 도시라고 한다. 그 후 서로마제국이 멸망하자 이어서 비잔틴제국 사람들이 살았다.

매표소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언덕을 올라가니 성벽 잔해와 동굴을 파 놓은 듯 깊고 컴컴한 통로가 보인다. 그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눈이 휘둥그레 졌다. 석조물로 된 거대한 원형경기장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밖에서 볼 때는 조그만 가스바 인줄 알았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콜로세움이다.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 한다.

관중석은 돌을 정교하게 깎아서 계단식으로 만들어졌다. 기울기가 거의 45도에 이른다. 밖에서 보이는 경기장 입구의 상부는 지상이고 관중석부터는 지하 3층인 셈이다. 원형경기장 상부는 고대 로마 건축 양식 그대로 거대한 돌 아치형이며 하부는 자연적 구릉지를 이용하여 만든 관중석이다.

이 경기장은 로마 제국의 제14대 황제 하드리아누스(재위 117~138년)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경기장은 5회 연재에서 소개한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촬영장소로 유명한 ‘엘 젬’보다는 훨씬 작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음이 너무 경이로울 지경이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