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석 박사의 제주지질 이야기
<24>당산봉·차귀도·와도

▲ 차귀도 응회암 노두.

수월봉 주변은 다양한 형태의 수성화산들이 존재한다. 수월봉에서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차귀도와 같은 섬들이 해안 가까이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고산 마을 해안에 자리잡은 당산봉, 자구내 포구 앞의 와도(누운섬)와 차귀도도 수성화산이다. 이렇게 제주도 서쪽 끝 고산리에는 좁은 해안지역에 다양한 수성화산체가 밀집되어 있어 수성화산 연구를 위한 좋은 조사 장소가 되고 있다.

지질학에서 무엇보다 중요시해야하는 것은 주변에 분포되어 있는 지형지물들의 형성과정을 시기적으로 구별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 먼저 만들어지고 이어서 다른 것이 만들어지는, 일련의 시간적인 흐름 속에서 지질학의 역사는 만들어 진다. 지질학에서 층서(層序)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층의 순서’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밑에 위치하는 층이 오래된 것이고 그 위에 놓이는 지층이나 암석이 후에 형성되는게 보통이다. 한 곳에 상하로 켜켜이 쌓여 있는 지층의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독립된 지층들이 서로 떨어져 있을 때에는 어느 것이 먼저 만들어졌는지 알기가 어렵게 된다. 이때 이용하는 방법이 지질학적 조사에 의한 층서 구분과 연대측정법이다. 상대연대와 절대연대라고 부르는 이 방법들을 적절히 적용해야만 어떤 지역에서 지질 층서를 설정할 수 있다. 지질 층서가 정립되면 그 지역 지질의 형성과정에 대한 시간적인 역사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마치 한 지역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시간 순서대로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순으로 늘어놓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지질학은 46억년이라는 장구가 지구의 역사가 반영된 것이므로 백년도 채 안되는 시간을 사는 우리들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다이나믹한 환경변화가 반영된다. 우선 시기적으로 다른 지층들을 차례로 나열한 후에 맨먼저 만들어진 지층부터 하나씩 시기별로 한 장씩 마치 책장을 넘기듯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러니까 앞장의 그림에서는 나중에 만들어진 지층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하는 것은 바로 현재 한 지역의 지층들이 수십만년에 걸쳐서 오랜시간을 들여 하나씩 만들어진 것들을 우리는 현재 동시에 한 장의 그림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한 장의 그림을 여러장으로 시기별로 나누어서 몇장의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이 시간적인 층서 설정이다.

또한 지질학적 층서 설정에서는 이 시간적인 개념에다가 공간적인 변화 양상을 겹쳐 넣어야만 한다. 즉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최근 2만년 전에는 전지구적인 빙하에 의해서 바닷물이 150 미터 이상이나 하강했다. 이렇게 되면 제주도 주면 해역은 대륙붕으로서 매우 얕은 바다이기 때문에 모두 육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연륙이 된다는 말이다. 이 당시 바다는 오키나와 가까이까지 후퇴하고 있었다.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은 육지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만약 당시 후기 구석기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면 대부분은 당시 강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금의 바닷속이 주요한 생활터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유적들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실예로 2만 7천년 전에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비양도의 경우를 보면 분석구의 오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현재의 모습과 같은 바닷속에서 화산활동을 했다고 한다면 비양도는 수성화산체라야 한다. 그런데 육지부의 중산간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송이로 이루어진 오름이다. 당시는 빙하기로서 해수면이 하강해 있었기 때문에 비양도는 육지부에 속하고 있었다. 따라서 화산활동도 육상 화산활동인 분석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시간적인 개념과 공간적인 환경변화를 동시에 고려하면 간단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렇게 시,공간적인 개념을 동시에 고려하여 지질층서를 설정하는 것이 제주도에서 화산활동의 역사를 해석하는 유용한 방법이다.

 

▲ 누운섬 상부에 퇴적된 응회암

▲말굽형 분화구 안에 알오름 품은 당산봉

과거 차귀당이 있어서 당오름이라고 불렀던 당산봉은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전에 형성된 응회구이다. 말굽형 분화구 속에 알오름을 품고 있다. 당산봉 말굽형 분화구는 북쪽 방향으로 크게 터진 형태를 보여준다. 용수리 마을 방향으로 열려있다. 제주에서 수성화산들은 대부분이 이런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과거 이중화산이라는 용어를 쓴 적도 있는데, 비교적 큰 규모의 원형 분화구 내에 송이로 이루어진 분석구 형태의 알오름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육상의 분석구(오름)에서도 말굽형 분화구를 많이 볼 수 있는데 분화구 일부분이 터진 형태이다. 이는 분화구 내부에서 후차적으로 분출한 용암이 분화구를 부수며 흘러나가 만들어진 것이다. 당산봉의 경우는 초기 화산활동 당시 얕은 바다에서 폭발하여 다량의 화산재를 분출하며 응회암층을 만들었다. 단기간에 형성된 수성화산체는 육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분화구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분출하는 마그마는 지하에서 지하수를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고, 분화구 속으로 바닷물도 들어갈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뀐다. 분출된 용암류는 분화구 외륜을 부수면 흘러나가 말굽형 분화구를 만들고 뒤이어 알오름인 화구구(火口丘)를 만드는 것이다.

 

▲ 누운섬과 차귀도

▲차귀도·와도 정상부에 수성화산 증거

차귀도에 대한 최근의 지질조사 결과 수성화산활동이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차례 발생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두 개의 큰 화산체가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겹쳐져 있는 독특한 형태의 화산이다. 차귀도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장군바위는 화산활동시에 화도(火道)에 있던 마그마가 분출되지 못하고 굳어져 암석이 된 것이다. 바위를 둘러싸고 있던 송이층은 바닷물에 씻겨나가 버리고 외돌개와 같이 홀로 바위로 남아있다. 씨스텍(sea stack)이라고 한다. 자구내 포구 앞에 위치하고 있는 누운섬(와도)도 사람이 누워있는 형태의 섬이다. 이 또한 수성화산이다. 채 굳어지지 않은 송이층과 용암이 일부 남아 있다. 분화구 내부에는 바닷속에서 용암에 밖혀있는 다양한 형태의 화산탄들이 잘 남아있다. 화산체 정상부에는 붉은색 송이층 위를 하얀색의 화산재층이 덮고 있어 이채롭다. 수성화산이었기에 당연히 화산재의 응회암층이 화산체를 덮고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바닷물에 침식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한 덩어리 남아있는 응회암의 노두가 이 화산이 수성화산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유일한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다.

 

▲ 누운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산탄.

▲당산봉 분출시기는 40만년전

수월봉 주변에서 화산지질학적 층서는 하부에서부터 당산봉, 차귀도, 와도, 광해악 현무암, 고산층, 수월봉으로 설정할 수 있다. 다음은 수월봉 주변에서 고환경 변화를 포함하는 화산활동의 역사이다.

약 40만년 전, 당산봉이 수성화산으로 얕은 바다에서 분출했다. 동시에 차귀도에서도 수성화산 활동이 시작되었다. 차귀도는 시간적 간격을 갖고 두 개의 화산체가 겹쳐져 있는 독특한 형태의 화산이다. 오랜 시간을 거친 후에, 약 21만년 전에 와도가 폭발한다. 같은 시기에 인근 육지에서는 광해악 현무암이 이 곳 해안까지 넓게 흘렀다. 현재 엉알길 해안가에서 관찰되는 현무암이다. 그 후 다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수만년 전, 해안 지역에서 고산층이 퇴적된다. 수월봉 응회암층 아래에 깔려있는 1∼2 미터 두께의 황색 점토질 퇴적층이다.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거의 현재의 상태로 복원되는 1만년 전에 수월봉은 수성화산으로 격렬하게 분화하여 한순간에 만들어졌다. 바닷속 환경에서 분화구를 비롯한 화산체의 대부분은 파도에 침식되어 사라져 버렸다. 현재 해안선을 따라 해안 단애에서 응회암의 노두가 남아있다. 이곳이 현재의 수월봉이다. 화산활동이 끝나는 시점에 뒤이어 수월봉 언덕위에 신석기 고산리 사람들이 정착하게 된다. 제주도 신석기의 서막이다.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수많은 돌화살촉들은 이들이 주로 수렵활동을 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제주지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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