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물의 도시 ‘자구완(Zaghouan)’ ②

석회성분 많은 타 지역과 달리 투명하고 맛있는 수돗물
153km 떨어진 지역까지 물 공급했던 물의 도시 명성 여전
구불구불 골목과 하얀 집, 푸른 창문은 ‘튀니지의 블루로망’

지난 호에 이어 이번에도 인구 1만6000명의 소도시 자구완(Zaghouan)을 소개한다. 앞서 살펴보았듯 자구완은 물이 귀했던 튀니지에서 드물게 물의 신전이 있던 신비의 도시다. 자구완 산(Zaghouan mountain)에서 지하 수맥을 통해 흘러내린 물이 ‘워터 템플’에 있는 조그마한 용정을 통해 솟구쳐 올라와 이곳으로부터 153km나 떨어져 있는 고대 카르타고의 안토니오 공동목욕탕 등 튀니지 해안도시 곳곳에 물을 공급했다. <편집자 주>

▲ 1900년에 촬영된 자구완 중심가의 모습. 성당과 이슬람 모스크사원이 서로 이웃처럼 나란히 있는 것은 아랍의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광경이다. 126년 된 ’세인트 루이스 성당‘은 1880년에 지어졌다.
▲ 1952년에 개교한 ‘사밭 샤워쉬아“가 나왔다. 이곳은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을 가르치는 학교이다. 1
▲ 자구완 메디나에 있는 공동 약수물. 자구완에서는 생수를 사마지지 않고 수도물을 직접마신다.

▲물의도시 자구완의 구도심
사실 ‘워터 템플’로 향할 때에는 자구완 시내 탐방은 전혀 계획에 없었다. 워터 템플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자구완 주(州)의 자구완 시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사실, 자구완에는 오래된 전통도시 메디나가 있는 줄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안전을 생각해서 서둘러 튀니스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메디나(Medina, 구 도심)는 이슬람 사회의 문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오래된 도시이다. 이곳은 지금도 전통을 지키면서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자구완 시내로 들어서는 길은 오솔길을 따라 구불구불한 도로를 내려간다. 한참을 내려가니 드디어 자구완 시내에 도착했다.

조그만 분수대에서 물이 뿜어 나오고,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아랍의 전통 물담배인 ‘시샤’를 피우고 있었다.
도시의 첫 인상은 사람들의 옷차림이 소박하는 것과 도시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이드를 자청한 워터 템플의 직원을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전통 아랍의 가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구 도시의 시작이라 한다.

아랍풍의 전통가옥들이 즐비한 조그만 골목을 따라 들어서는 순간 나는 시대를 거슬러 또 하나의 다른 튀니지를 보고 있다.

외적의 침입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미로처럼 만든 좁은 길은 튀니지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튀니지 어느 지역에 가든 구 도시의 전통 가옥의 특징은 하얀색과 블루의 조화이다. 건물은 회를 칠한 것과 같은 하얀색이며 창문은 모두 푸른색이다. 내 눈에는 색의 조화가 너무나 아름답다. 나는 튀니지를 소개할 때마다 이런 색의 조화를 ‘튀니지의 블루 로망’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 자구완 메디나의 골목길. 길이 미로처럼 복잡하고 작은 이유는 방어를 목적으로 지어졌기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물맛이 뛰어난 물의 도시
골목길에서 처음 만난 유적은 식수대였다. 물의 도시인지라 사람들은 수도관을 통해 흐르는 물을 직접 마시면서 용기에 담고 있었다. 튀니지의 물에는 석회석 성분이 많아 직접 마시지 못 한다. 그래서 튀니지 사람들은 생수를 사서 마신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수돗물을 직접 마시고 있는 것이다.

나도 물의 도시의 물맛을 보기 위해 “아슬레마!(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앞줄에 있던 한분이 나를 부르면서 먼저 마시라 한다. 웬 동양인이 아랍어로 인사를 하면서 줄을 서는 모습이 그들도 신기했던가 보다.

물을 마시는데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다. 물을 마시자마자 이구동성으로 물맛이 어떠냐고 질문한다. 정말 물맛이 좋았다. 나는 “베히야 바르샤(너무 좋다)!” “함둘릴래(알라게 영광을)!”라고 했다. 그러자 나에게 튀니지 아랍어를 어디서 배웠냐면서 난리가 났다. 나는 “애나 느끌 스와이야 아라빅(나는 아랍어를 조금 안다)”이라고 했더니 여기 저기서 “inti mniin(어디서 왔니)?”라며 함성을 지르면서 서로 악수를 하자고 난리다.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 말로 인사를 하면 좋아하는 것 같다.

▲이슬람사원과 성당이 나란히
골목길을 더 들어서니 1952년에 개교한 ‘사밭 샤워쉬아’가 나왔다. 이곳은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다. 내부를 보고 싶었지만 일요일이어서 닫혀있다. 그 학교에서 조금 더 골목길을 따라 들어서니 천년이 됐다는 이슬람사원이 나왔다. 사원입구에는 1030년에 건립했다는 표시가 있다. 가이드는 이 사원이 튀니지에서도 몇 안 되는 아주 오래된 이슬람 사원 중 하나라고 한다.

다시 길을 따라 더 깊이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신기한 모습이 보였다. 현대식 이슬람 사원과 성당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이다. 튀니지 인들은 종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연재를 통해 여러 번 쓴 적이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웃처럼 나란히 있는 모습은 아랍의 세계에서 너무나 신기한 일이다. 가이드가 이 성당 이름은 ‘세인트 루이스 성당’으로 1880년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앞서 8회 연재 ‘한니발 장군의 나라 튀니지의 카르타고’에서 소개했던 1892년에 건축한 세인트 루이스 성당과 같은 이름이다. 세인트 루이스는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이름으로서 1270년에 제8차 십자군을 이끌고 튀니지에 진군하던 중 전염병으로 튀니지에서 사망했다.

튀니지는 지금도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면서 살아간다. 튀니지는 기독교를 배척하지 않는 나라이다. 이슬람은 과격하다는 오해와 진실에 대해서는 튀니지의 종교에 대해 연재할 때 다시 소개할 예정이다.

▲ 구불구불 한 길을 돌다보니 언덕 자락에 거대한 개선문이 나왔다. 이 개선문은 2~3세기에 건축된 로마의 ‘악 드 트엄프(승리의 아치)’라고 한다.

▲시대 미정의 거대한 개선문
골목길을 더 깊숙이 들어서니 오스만 터키 건축양식의 이슬람 사원과 묘지가 나왔다. 이 사원은 오스만 터키가 이곳을 지배할 때 세운 이슬람 사원이다. 1700년에 세워졌는데 그 안에는 이 사원을 세운 ‘알 아즈 우즈’라는 분의 묘지가 있다. 묘지는 청색기와로 덮여 있는데 묘지 또한 예술 작품이다.

메디나 안을 구경하면서 가만히 보니 오래된 도시 안에는 이슬람사원들이 너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까지는 아주 인구가 많은 도시 중 하나임을 짐작케 했다. 튀니지에 있는 여느 메디나처럼 구불구불 한 길을 돌면서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는 보물들을 보며 걷다보니 어느덧 끝자락에 거대한 개선문이 나왔다. 이 개선문은 2~3세기에 건축된 로마의 ‘악 드 트엄프(승리의 아치)’라고 한다. 가이드의 말로는 이 문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고대 로마의 어느 황제 때 건축된 개선문인지 알 수는 없으나 ‘워터 템플’이 2~3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봐서 ‘악 드 트엄프’도 그 시대에 건립된 것이 아닌 가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자구완 메디나를 돌다보면 다른 지방의 메디나와는 아주 다름을 알 수가 있다. 다른 지방의 메디나에는 대부분 전통공예품과 옷들을 파는 상가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상가가 없다. 관광객들이 ‘워터 템플’만 보고 돌아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곳을 구경하면서도 관광객들을 마주쳐 본적이 없다.

예정에 없던 메디나를 돌다 보니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렀다. 튀니지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가이드에게 고마움의 작별인사를 하면서 언제 가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내가 “앗 살라무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고 하자 그도 내게 “오 알레이쿰 살램(평화가 당신에게 있기를)”이라고 화답했다. <고병률 제주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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