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회> 슈퍼마켓과 재래시장

나는 튀니지에 한국국제협력단원으로 파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아프리카 지역은 기근, 식수 부족, 빈곤, 정치 불안과 기후의 영향으로 가물고 사막화됐으며 모기에 의한 질병 감염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떠나기 전 한국에서 수화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무게의 대부분을 식료품, 계절별 옷 등 잡다한 물건로 가득 채웠다. 

▲떨어진 국자가 만들어준 특권

그런데 튀니지에 도착한 뒤 바로 현지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모노프리(슈퍼)에 갔다가 진열돼 있는 생필품을 보고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도대체 튀니지가 선진국인지 후진국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2개월간의 홈스테이를 끝내고 드디어 독립을 하게 됐다. 튀니지 국회의사당 근처의 아파트에 입주한 첫 날, 이웃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모노프리가 5분 거리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그릇을 사기 위해 가방을 매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다가 보안요원에게 제재를 당했다. 튀니지에서도 우리나라처럼 매장에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소지품을 보관하고 들어가야 하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날 냄비, 주전자, 국자 등을 잔뜩 사서 집으로 향하는데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따라오면서 나를 불렀다.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와서 아랍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너무 겁에 질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에 들어가 버렸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건을 정리하다보니 국자가 없는 것을 발견했지만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튀니지 아랍어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차마 다시 모노프리에 갈 수는 없었다.

며칠 후, 쌀을 사기 위해 다시 모노프리에 갔는데 매장 입구에서 인자하게 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가 나를 보며 웃는 것이었다. 가만히 보니 며칠 전에 나를 붙들고 뭐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는 “너 지난번에 국자를 안 갖고 갔지?”라면서 국자를 주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바르도(지역이름) 모노프리의 총지배인이었다.

검정 옷은 테러와 도난을 대비해 보안요원들이 입는 제복이었다. 그 인연으로 나는 바르도 모노프리에서 일하는 30명이 넘는 직원들에게 소문이 퍼지면서 한국인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유일하게 가방을 매고 매장을 맘대로 드나들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되었다.

▲ 튀니스 시냉의 모노프리 전경
▲ 시티 제앙

▲한국보다 더 큰 대형쇼핑센터를 보다

어느 날 튀니지국립도서관 직원이 나에게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는, 프랑스 자본으로 운영하고 있는 시티제앙(city Géant)이 있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자가용으로 1시간을 달려가니 인가가 전혀 없는 한적한 곳에 시티제앙이 보였다. 장갑차로 무장한 경찰들이 차량마다 검문검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안내해주는 직원이 길게 늘어선 차량행렬을 무시하고 한적한 진입로로 들어섰다. 경찰이 다가서서 나를 보더니 검문도 하지 않고 들어가라고 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방문할 때마다 우리는 검문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이 외국인에게 주는 특혜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쇼핑객으로 가득한 이곳에는 베네통, 라코스테 등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각종 의류 브랜드와 유럽에서 수입된 화장품, 삼성과 LG에서 만든 전자제품들이 즐비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큰 마트는 본적이 없었다. 이 후 이 곳은 내가 일본 간장이나 참기름을 사기 위해 자주 이용하던 매장 중 하나가 되었다. 이곳 말고도 국제적인 대형마트 체인점 까르푸가 있는데 이곳에는 아시아 식당이 있어서 고향음식이 그리울 때마다 이용하곤 했다. 물론 한국음식점은 없었지만 말이다.

▲ 시티 제앙

▲이슬람 국가 마트에서 돼지고기와 술 판매

그런데 이 대형마트가 특이한 것은 술과 돼지고기를 판다는 것이다. 튀니지는 이슬람국가이기 때문에 코란의 율법에 따라 공식적으로는 술을 마시지 않고 돼지고기도 금기시 한다. 이유를 알아봤더니 튀니지가 유럽인들이 휴가철에 제일 선호하는 방문 국가이기 때문이란다.

중소형 마트로는 모노프리(Monoprix), 샹피옹(Champion), 마가장제네랄(Magazin general), 카디(Cady) 등이 있었다. 대부분 주거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민들이 접근하기가 좋은 편이다. 농산물과 유럽에서 수입된 다양한 생활용품들을 소매점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장이 작은 경우에는 육류와 야채를 판매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한국의 웨하스와 맛이 같은 사이다(SAIDA) 사의 웨하스를 자주 사먹었다. 크기가 한국 웨하스의 다섯 배가 되는데도 가격은 1.8디나르(1000원)다. 대부분 봉지에 있는 과자들 가격은 1디나르 이내이며 비싼 과자도 2디나르(1400원)를 넘지 않는다.

튀니지의 마트 매장 안에서는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한다. 들키면 보안요원들에게 몸수색을 당하고 심지어 정보 누출로 경찰들이 출동하기도 한다. 튀니지를 여행할 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 곳에서 수많은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바르도 모노프리에서는 우연하게 인연을 맺은 총지배인의 배려로 맘대로 내부를 촬영할 수 있었고, 시티제앙에서는 나를 항상 도와주는 튀니지국립도서관의 동료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노트북을 사주면서 매장 직원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찍을 수 있었다.

▲한국의 오일장과 같은 ‘쑥’

튀니지에도 한국의 5일 시장과 유사한 쑥(Souks)이 있다. 쑥은 우리나라 전통시장처럼 야채와 생활용품 등을 판다. 하지만 줘도 안 입을 것 같은 옷과 신발, 속옷같은 것들을 산더미 같이 쌓아 놓고 파는 점이 조금 다르다.

대부분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수입한 구제품들이다. 옷 하나 가격이 보통 500밀림(300원)에서 5다나르(3000원)를 넘지 않는다. 쑥은 아침에 열었다가 2~3시만 되면 폐장을 준비한다.

나는 튀니지의 슈퍼마켓과 재래시장, 전통시장에서 튀니지의 진면목을 확인하면서 아프리카가 모두 가난하고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국토 대부분이 사막일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튀니지의 생활용품들은 우리나라 시장에서 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유럽 각국에서 넘어온 상품들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나라보다 더 잘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대형마켓에 있는 것은 이곳에도 전부 있었다. 그런데 없는 것이 있다. 사계절이 있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는 나라인데도 전기담요가 그렇고, 전기밥솥이 그랬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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