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수형인 현우룡·오영종씨 옥살이 대구형무소 방문 ‘70년만의 대화’

“공권력이 없는 죄 만들어…생존 수형인 죽기 전에 진상조사 이뤄져야”

백발노인이 된 4·3 수형인 생존자들이 “우리가 원하는 생전에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눈 감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현우룡(95)·오영종(90) 할아버지는 6일 대구 크리스탈호텔 연회장에서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가 주최한 ‘4·3당시 대구형무소 수형생존자와 70년 만의 대화’에서 당시 겪었던 고초를 술회했다.

현 할아버지는 1949년 7월 2일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는 “당시 갖은 고문과 폭행으로 있지도 않은 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죄명은 국방경비법에 따른 ‘도로차단 방화 가담’이지만 본인은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현 할아버지와 함께 연행됐던 사람 대부분이 같은 죄명을 받았다.

1948년 당시 군사재판에서는 4·3수형인 대부분이 ‘내란죄’가, 1949년에는 ‘국방경비법’에 따른 죄명이 주를 이뤘다는 점에서 형식적인 재판이 진행됐음을 짐작케 한다. 

오영종 할아버지도 1949년 7월 2일 대구형무소에서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본인이 수감되기 전 아버지가 군인에게 붙들려 총살을 당했고, 자신의 집도 불에 태워졌다. 당시 다리가 불편했던 할아버지는 불에 타 죽었다.  

오 할아버지는 군경을 피해 도주하다가 총상을 입기도 했다. 군사재판이 진행됐지만 당시에는 형량을 말해주지 않았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뒤에야 자신이 징역 15년형을 받았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오 할아버지는 “형식적인 재판이다. 당시 총상으로 의식도 혼미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오 할아버지의 아들은 “2년 전에야 아버지가 고초를 겪었던 말을 들었다. 이달 29일 4·3 수형인 재심 본안 소송이 진행되는데 무죄 판결을 기대한다. 아버지가 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동윤 4·3 도민연대 대표는 “시대의 공권력이 없는 죄를 만든 것이다. 억울한 누명을 씻어주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만, 2003년 4·3 진상보고서를 발간한 이후 손을 놓고 있다. 생존 수형인들이 죽기 전에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손을 놓았으면 지방정부인 제주도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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