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가   조   정   의

 소주 한 잔합시다. 이 말은 친근감을 내포한다. 서로가 적조(積阻)하게 지낼 때 먼저 소주 한 잔합시다, 하고 전화를 걸게 되면 그 것이 곧 소원함을 풀고 감정을 털어놓게 된다. 소주 한 잔의 위력은 다양한 감정을 유발한다. 요즘은 대포 한 잔합시다, 라고도 하지만 소주 한 잔 합시다가 한결 편하게 받아드려진다. 아무튼 소주는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다.

   이렇듯 우리가 즐겨 마시는 지금의 소주는 ‘알콜’에 물과 향료를 섞은 희석 식 술이라 소주의 원조는 아니다. 원래의 소주(燒酒)는 곡주나 고구마주 따위를 끓여서 얻는 증류식 술로 무색투명하며 ‘알콜’ 성분이 많은 게 특징이다. 우리 고장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논이 적어 쌀로는 술을 못 빚었고 밭곡식인 좁쌀이나 고구마로 소주를 내렸다.

   기록에 의하면 소주가 한반도에 들어 온 것은 몽고의 침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 땅에 몽고군이 말 타고 들어오면서 소주가 터를 잡기 시작했다는 근거는 그들의 군사기지가 있던 안동과 제주에 소주문화가 다른 지방 보다 발달되어 왔다는데서 기인한다. 특히 제주에서는 좁쌀을 원료로 노주(露酒)라는 맑은 술을 빚어 진상했다는 설도 전해진다. 

   예전엔 소주가 상류계층에서만 마시던 고급술이었다. 그런 소주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서민들과 애환을 달래며 파란만장한 세월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서민들과 소주는 뗄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도심의 골목길 어귀에 비닐포장을 치고 ‘카바이트’ 불빛을 밝히며 소주를 파는 곳이 한두 군대가 아니었다.

   그 때는 병따개를 옆에 두고도 이빨로 병뚜껑을 땄고, 안주로 나온 닭의 모래주머니를 굳이 닭똥집이라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그 것이 곧 그 시절에 소주를 즐기는 술꾼들의 객기였다. 암울했던 시절에 포장마차 속에서 고향을 이야기하고 정치를 논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 다 소주의 힘이었다. 이처럼 소주는 우리와 호흡을 같이해 왔다.

   올해 우리는 두 번이나 거센 선거바람의 중심에 서 있었다. 4·15총선과 6·5 재·보궐선거를 치르면서 선거특수를 노렸던 식당가는 썰렁했다고 한다. 예전엔 선거 때가 되면 소주가 불티나게 팔렸는데 이 번에 치른 두 번의 선거에는 별 재미를 못 보았다고 이구동성이다. 서슬이 시퍼런 선거법이 위력을 발휘한 것일까.

  이제 두 번의 선거는 탈 없이 치렀다.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도의원과 시의원에 이르기까지 선거를 치렀던 당사자들은 당락을 떠나 조금씩은 갈등과 앙금이 응어리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깊어가는 갈등과 응어리진 앙금을 푸는 방법 중에 하나가 “소주 한 잔합시다” 라는 말이다.

  이긴 자나 진자나 누구든 먼저 소주 한 잔하자고 전화를 걸어야 한다. 그 한 통의 전화가 곧 화합이고 상생으로 가는 첩경이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앙금은 쌓여 응어리지게 마련이다. 시간이 가기 전에 누구든 먼저 “소주 한 잔합시다” 하는 전화를 걸자. 그 한 통의 전화에 골이 깊어가던 갈등도, 응어리진 앙금도 봄눈 녹듯 풀리게 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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