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 떼었는데 “나 몰라라”

공기업인 ‘제주교역’이 한 수산물 중개인에게 ‘10억을 떼인 사건’은 날이 갈수록 의혹에 의혹의 꼬리를 물고 있다.
“국제교역 업무까지 취급하는 공기업이 개인에게 한꺼번에 10억 원이라는 거액을 떼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지만 그 과정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사태 발생 후 전개된 해괴한 대응태도다.
제주교역 대표도, 이사회도, 주주들로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그래서 각종 의혹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교역은 제주산 농ㆍ수ㆍ축산물의 수출시장 개척과 확대를 위해 지난 1994년 12월, 30억원을 출자해 출범했다.

제주도를 포함 도내 자치단체에서 33.3%, 농ㆍ수협 등 생산자 단체에서 51%, 도내 일반기업 등에서 15.7%의 지분을 가진 공기업이다.

2003년에 도 보유주식 10%를 민간에 매각하여 민영화로 포장했지만 여전히 4개시군 자치단체에서 23.3%, 농수협 등에서 51% 주식을 보유하는 등 아직도 사실상의 공기업이나 다름없다.

날이 갈수록 각종 의혹 증폭

그런데 이런 공기업에서 회사 운영과 관련하여 도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했던 2001년에 ‘문제의 10억원 사건’이 진행됐던 것이다.

제주교역은 이때 창립 출자 자본금의 33%에 해당하는 10억원을 부산소재 수산물 중개인에게 미리 지급했다. 이해할 수 없는 “수산물 거런 명목이었다.

그런데 사들이겠다던 수산물은 3년이 지나도록 어디로 갔는지 오리무중이다.
담보물도 없었다. 달랑 믿지 못할 어음 한 장이 고작이었다. 채권확보 등 대책도 없이 ‘거금 10억원’을 어린아이 눈깔사탕 주듯 줘버린 것이다.

회사 재무상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도 반드시 거쳐야 될 이사회 결의도 없었다.

대표이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단독으로 결정했다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가 않다.
대표이사는 알아주는 수협 조합장 출신이다. 수협중앙회 감사까지 지냈다.

이사회 결의사항 등 주식회사 업무처리를 모를 리가 없다. 오히려 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전문가다.

그래서 제기되는 것이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대표이사가 뿌리칠 수 없는 권력의 압력이 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마침 대표이사는 당시 도지사가 선거논공행상에 따라 발탁한 인사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다 10억원이 건네진 시기는 공교롭게도 2002년 도지사 선거 등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이기도 했다.

“10억원중 일부가 특정인의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세간의 의혹이 새끼 치면서 그럴듯하게 유포되는 이유다.

수사 통해서라도 의혹 밝혀야

그런데 더 큰 의아심은 이처럼 거액을 날려버렸는데도 이사회 등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데 있다.

날려버린 10억원은 농어민의 피땀이 벤 돈이나 다름없다. 도민의 호주머니에서 짜낸 재산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회는 농ㆍ수협 조합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시장ㆍ군수도 이사다. 감사 역시 농협조합장 등 생산자 단체장이다.

그렇다면 시ㆍ군이나 농ㆍ수협 등에서 앞장서서 ‘10억원 의혹’을 파헤쳐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도 의혹을 파헤치기보다 엉뚱한 이유를 들어 ‘10억원 결손 처분’을 승인해 줘버린 것이다.

이는 농어민과 도민에 대한 배신행위나 다름없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직무유기이기도 하다.

‘10억원’을 꿀꺽해버린 “수산물 중개인과 교역대표와 이사들이 한통속이 되어 뒷구멍에서 10억원을 요리했거나 방조 또는 조장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은 그래서 설득력을 갖는다.

따라서 ‘10억원 의혹’은 유야무야 덮을 사건이 아니다. 수사당국에 의뢰해서라도 철저히 파헤쳐야 할 공기업의 스캔들이다. 그 피해의 영역에 불쌍한 농어민과 도민들이 있다.

이 사건 연루자는 ‘배임죄’나 ‘배임수증재죄(背任收贈財罪)의 요건을 두루 갖추었다는 것이 재야 법조 인사들의 일반적 시각이다.
의혹을 파헤치는 것은 진실을 캐는 작업이며 사회 정의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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