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의미 있는 개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과연 가능한가. 우리는 그 답을 찾아야 한다.

개발은 인위적인 발전이다. 한 사회의 발전은 ‘자연적 질서’에 의해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발전은 개발이라는 역동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 때 얼마나 지혜롭게 개발하느냐에 따라 발전은 좋아질 수도 있고, 반면에 나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개발을 오로지 물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오히려 능동적 사회를 창조해 나가는 과정으로 봐야 하고,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변혁의 이념을 가지고 자기 개선을 추구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개발의 중심개념을 단순히 재화로부터 출발하여 소득증대에 두기보다는, 사람 자체의 잠재능력을 촉발시켜 나가는데 의미를 두는 까닭을 음미해보면 그것의 참뜻을 이해할 수가 있다.

따라서 오늘 우리의 문제의 해답은 ‘개발의 궁극적 목적은 지역주민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데 있다’는 말에서 찾아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다.

개발은 개인적 가치들의 반영

개발이란 궁극적으로는 개인적 가치들의 반영이며,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 전체의 틀에서 조건지어지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사회적 가치는 개발을 평가하는 근본적인 기준이 된다.

개발을 보는 사회의 과정도 그 지역사회 자체가 행한 평가에 따라 매우 다양한 것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의 ‘종합개발계획’을 바라보는 시각과, 오늘의 이른바 ‘국제자유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도 그 이유에서다.

사람이 사회와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영역적 정체성’이 요구된다. 우리에게 있어 ‘제주’라는 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개발의 최종적인 분석대상의 중점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에 두어져야 한다. 잘 살고자 하는 의도적인 행위가 바로 개발일진대,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음을 전제로 하여, 과연 잘 살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준비해야 한다.

‘개발의 대가로 지역주민의 고통이 증가하고 의미 있는 삶이 파괴된다면 그러한 개발은 차라리 그만 두는 게 좋다’는 나의 주장도 그에 대한 해답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으로 봐야 한다.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한 과정

개발은 직선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그것은 비약의 형태를 취하기도 하고, 변증법적 전환의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개발이 바로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한 역동적 과정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이 시대의 개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개발은 어떤 형태의 것이든, 지역주민들의 삶의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사고(思考)의 발단으로 하여 계획이 수립되고 추진돼야 한다.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가진 지역주민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합리적 목표라는 구실로 그것만을 추구할 경우, 아무리 원대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없다.

개발의 이면(裏面)을 아름다운 말로 포장하는 허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진정 의미 있는 개발을 이룰 수 없다. 개발효과의 참여 없이 내 고장에 자리잡고 있는 개발 시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게 여기던 시절은 벌써 지나지 않은가.

 제주개발은 우리의 사회적 과정을 구체적으로 담아내는 양식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간단치 않음을 나는 모르지 않는다. 제주라는 공간과, 그 위에 살고 있는 제주사람의 지역문제는 사회적 총체적 과정에서 파생되는 문제가 중첩적으로 표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제자유도시’를 단순히 개발이라는 평면적 문제로 보기보다는, 제주사람이 제주라는 구체적 공간에서 생활터전을 가꾸어 나가는 입체적 과정으로 파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발의 지역화’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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