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곳곳의 하천이 강으로 변신하고, 엉또폭포로 사람들이 몰릴 정도로 태풍 ‘송다’와 ‘트라세’가 많은 물을 퍼붓고 떠났다. 다행히 강풍을 동반하지 않아 참깨는 쓰러지지 않았다. 비만 오길 기다린 맹꽁이들은 농수로와 저류지에서 합창대회를 열었다. 사실 저류지가 더 기다렸다. 목이 타고 바닥이 갈라지고 오던 새들도 떠난 터라, 매일 하늘을 원망하고 있었다.
장마철이나 태풍 시기에 비가 오면 제주 사람들은 걱정거리가 한 둘이 아니었다. 밭에 물이 고이면, 일 년 농사를 망치고 자칫 소홀하면 이웃까지 손해를 끼친다. 평소 농수로를 잘 관리해야 빗물이 밭에 머물지 않고 저류지나 바다로 보낼 수 있다. 저류지의 암반 특성과 입지여건에 따라 물이 차는 정도가 다르다. 일부 저류지는 수생식물과 잡초로 우거지고, 새들의 쉼터이거나 먹이 공급처가 되고 있다. 생태적으로 안정화가 진행되는 저류지는 양서류와 조류의 번식지이며, 특히 맹꽁이의 산란 장소로 최적지이다. 또한, 수심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저류지는 저수지와 같이 갈수기에 물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저류지의 물은 야생동물뿐만 아니라 농작물을 위해서라도 오염원이 적어야 한다.
하지만 저류지로 모이는 것은 빗물만이 아니다. 바로 토사와 쓰레기이다. 토사는 정기적으로 준설 작업을 통해서 해결해줄 수 있지만, 쓰레기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밀려오는 온갖 잡동사니를 다 받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료 포대, 농약병, 플라스틱, 유리병, 캔, 스티로폼, 비닐류 등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설마하는 생활 쓰레기도 섞여 있다.
혹시나 해서 찾아온 중대백로가 저류지한테 혼난다. 누가 버렸는지 어느 동네에서 왔는지 금방이라도 범인을 찾아오라는 기색이다. 저수지는 평소 사람들이 즐겨 찾는 생태공원이지만, 저류지는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저류지에 오염물이 보이면 죄다 농민들을 의심한다. 고되고 힘들지만, 저독성 농약과 친환경 비료를 사용해온 농민들로서는 참으로 억울하다.
시도 때도 없이 어디선가 버리면, 원치 않는 사람이 치워야 하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돌고 도는 쓰레기라지만, 저류지가 바다처럼 이런저런 쓰레기까지 받아주는 흙탕물로 가득 차서는 곤란하다. 오죽하면 환경세 도입을 주장할까. 마음껏 허비하고 버리는 자가 바로 범인이다. 비만 오면 몰래 기다리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새들은 다 알고 있다. 홀로 찾은 중대백로마저 시커먼스백로로 변신할까 우려된다. 제주섬도 그렇다. 아무 때나 찾아와 제주 사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수준 낮은 사람들의 시험 무대가 아니다. <김완병 동물연구원/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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