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우의 차이나 칼럼- [43]

제주에서는 1980년대말 1990년대 초 우스갯소리가 유행했었다. 고량부 3성씨가 태어난 제주에 신(新) 고량부가 모인다고 했다. 1991년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당시 소련의 최고 권력자였던 고르바초프와 중국국가주석 양산쿤(楊尙昆), 미국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고향(?)인 제주를 방문한다는 것이다. 동구권이 해체되기 시작한 이후 동북아 각국에서 외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주는 그 중심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제주 첫 방문한 중국 최고 권력자
실제로 1991년 4월19~20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소련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제주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했었다.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2008년 3월 제주를 방문하기도 했다. 양상쿤 국가주석은 고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한중 수교를 성사시켰지만 끝내 한국을 방문하지는 못했다. 양 주석에 이어 권력을 잡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은 제주를 처음으로 찾은 중국의 최고위 지도자이다. 이후 주룽지(朱容基), 후진타오(胡錦濤), 시진핑(習近平) 등 중국의 내로라하는 최고 지도자들이 잇달아 제주를 방문하면서 중국인들에게 제주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 90년대 중국의 고도성장기를 이끈 장 전 주석이 지난 11월 30일 타계했다. 1926년생으로 장쑤(江蘇)성 양저우(楊州)에서 태어난 장 전 주석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1985년 상하이(上海)시장에 임명됐고, 이후 1987년에는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25명 안에 들어서면서 최고위직에 올랐다.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자오즈양(趙紫陽)에 이어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오르면서 중국 최고 권좌에 등극했다. 1997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사망한 이후 사실상 중국의 당·군·정을 장악한 최고 실권자가 됐다. 이후 후진타오 주석의 1기가 끝나는 2005년까지 실권을 쥐고 흔들었고, 본인을 포함한 측근 상하이방의 부정부패는 중국 공산당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정도였다. 중국의 초고도성장기 1990년~2012년 시진핑 등극 이전까지 중국의 실질적인 최고 실권자로 권력을 누렸던 그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했다. 장 전 주석은 1995년 11월 16~17일 제주를 방문해 화제가 됐었다. 
11월13일부터 4박 5일간 방한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이후 국내 공장시찰과 경주를 방문한 장 주석은 18일 일본에서 열렸던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앞서 1박2일의 짧은 일정으로 내도했다. 장 전 주석이 제주를 방문한 이후부터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잇따라 제주를 방문해 ‘장쩌민’ 후광 효과라는 추측이 많았다.
제주를 중국에 알리는데 큰 기여
그러나 장 전 주석이 다녀갔던 한경면 저지리 분재예술원 성범영 원장의 전언에 따르면 “일개 농부가 정부 지원없이 혼자서 세계적인 공원을 조성했는데 그 개척정신을 배우라”는 장 전 주석의 지시에 의해 중국 최고위 인사들의 내도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중국인 관광객의 제주방문 물꼬를 텄던 장쩌민 전 주석이 타계하자 주제주중국총영사관은 조기를 걸고 분향소를 마련했다. 제주를 중국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장 전 주석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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