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체제 자본은 거대한 도시로
커뮤니티 비즈니스·지역자산화가 대안

10월 25일 충북 제천에서 열린 사회적 농업 심화 워크숍.
10월 25일 충북 제천에서 열린 사회적 농업 심화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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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가 돈을 벌면 그 돈은 어디로 흘러갈까. 한 번쯤은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시장경제 논리대로라면 자본은 거대한 시장이 형성된 곳으로 몰린다. 만약 농촌에 돈이 흘러들었다면 이 돈은 다시금 거대한 시장이 있는 도시로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논리이다.

그렇다면 자본을 농촌 안에 가두는 일은 불가능할까. 환경공학자이자 오랜 기간 도시재생 컨설팅 일을 해온 임경수 박사는 지난 25일 충북 제천에서 열린 사회적 농업 워크숍에서 농촌에 자본을 가두는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농촌 자본시장의 ‘돈맥경화’

임 박사는 지역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농촌 사회 구조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임 박사는 “자녀가 자전거 타이어에 공기가 빠져 충남 서천읍의 한 자전거 수리점을 방문한 적이 있다”며 “통상 무료로 해주는 일에 주인아저씨가 투덜투덜 대길래 왜 그러냐 물었더니 ‘서천읍에 사시는 분들은 20분 거리에 있는 이마트에서 자전거를 사 와서는 자꾸 이런 것만 해달라 한다’는 하소연이다”라고 말했다.

임 박사는 이어 “일 때문에 전남 하동읍 녹차마을에서 농가들을 인터뷰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이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며 “‘녹차로 돈을 벌어 술은 어디서 마시느냐’ 물었더니 하동읍이 아닌 광양시라고 답했다. ‘농산물은 어디서 사시느냐’ 여쭸더니 이번에는 진주 이마트에서 산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 전체로 확장된다.

임 박사는 “전주 한옥마을에서 가장 뜨거운 사업은 한복을 빌려주는 것이다. 조사 결과 한복을 한 번 빌려주는 데 8000원 정도의 수익이 남았고, 한복값은 7~8만원 정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20~30번 빌려주고 나면 한복이 해지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교환해줘야 한다. 그런데 저 한복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조사해봤더니 답은 서울의 광장시장에 있었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이 전주 한옥마을을 찾아 한복을 빌려 입게 되면 수익 중 일부는 다시 서울 광장시장으로 빠져나가는 것.

소득 ‘업’ 지출 ‘다운’ 흥미로운 대안

임 박사는 “이제 우리는 다른 관점에서 농촌을 바라봐야 한다”며 “농가의 경제 상황을 윤택하게 만들려면 농업 외 수입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이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피력했다.

농업만으론 농가들이 더 이상 생계를 꾸리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는 만큼 겸업을 통해 농업 외 수익을 올리거나 반대로 나가는 돈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 박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대안으로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강조했다.

지역에 필요한 재화를 주민 A씨가 생산해 저렴하게 공급한다면 이것을 소비한 또 다른 주민 B씨는 자연스레 지출이 준다. 결국 A씨에게는 일자리가, B씨에게는 지출 감소의 기회가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커뮤니티 비즈니스다.

임 박사는 “학부모가 요일별 돌아가며 아이들을 돌볼 경우 비용을 낮추면서도 서비스의 질은 올라가는 구조가 된다”며 “이처럼 소비자가 생산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이와 비슷한 일들이 좀 더 획기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 박사는 “저희 마을에는 요리사가 요일별로 바뀌는 공유식당이 있는데, 매주 수요일이면 이탈리아에서 살다온 요리사가 스파게티를 요리한다”며 “이처럼 생산자와 소비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식당이 운영되는 일이 농촌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 모두의 공동 자산 만들어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을 많이 가진 쪽으로 돈이 흘러 들어간다. 우리나라의 경우 IMF 사태를 거치면서 자본의 비중이 노동소득 보다 자본소득에 더 치중됐다.

임 박사는 “어찌 보면 노동만으로 소득을 올리려는 사람들에게는 대한민국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가 된 셈”이라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선 자산을 좀 더 공동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임 박사는 “사회적 경제를 이야기한 칼 폴라니는 돈을 벌게 하는 악마의 맷돌이 있는데, 그것은 자본이 노동과 금융, 토지를 소유하는 시장경제라 주장했다”며 “협동조합과 사회적 금융을 통해 공동체가 노동과 금융을 소유할 순 있지만 아직까지 토지를 소유하는 것에 대한 대안은 몇 안 되는 상태”라고 말했다.

임 박사는 “그래서 최근에 지역자산화 또는 신용자산화의 논리들이 활발하게 일어나 지역사회 내에서 쓸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내고, 또 이것을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끔 만들자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민간이 돈이 없기 때문에 아마도 가장 좋은 방법은 정부가 지원하고 시민이 소유·관리하는 방식일 것이다. 영국의 경우 이것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법률까지 만들어 다양한 사례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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