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이장 박종관씨 소멸 위기 놓인 전통문화 복원 구슬땀
빈집 뜯어가며 청년 유치 박차…돌봄학교·동아리모임 활기

박종관 경북 상주시 모면동 정양리 이장.
박종관 경북 상주시 모면동 정양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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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시 모동면 정양리는 전국에서 인구 유입이 활발한 마을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올해 기준 주민 157명이 모여 사는 다소 소박한 마을이지만 이곳에선 매년 아이가 태어나고 이주도 해마다 한두명씩 해와 인구가 자연증가하고 있다.

정양리마을의 20세 이하 인구는 현재 약 20명으로 70세 이상 고령층이 대부분이었던 과거완 다르게 연령별 균형이 서서히 맞춰지고 있다. 지난 2017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는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대통령상(금상)을 수상할 만큼 주민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마을 주력 작물은 포도를 비롯한 과수이다. 제주매일은 10년째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박종관(50)씨를 만나 정양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농촌에서의 세대별 균형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리 단위의 작은 농촌은 결코 젊은이들을 위한 곳이 아니지요. 아직까지도 농촌의 주력세대는 노인이며, 생활양식과 정책 또한 이들 세대에 맞춰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20대에 귀농해 어느덧 중장년층에 접어든 박씨는 자신을 보고 ‘고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농촌을 지탱하는 힘이 바로 젊은이들의 노동력에서 비롯됐지만, 호미를 든 청년들이 줄어드는 모습에 박씨도 이제 ‘새로운 물’이 흐르지 않는 농촌의 현실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2018년쯤부터 청년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모두가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당시 보조금이나 행정 지원도 없이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마을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기에 이르렀죠. 마을에 빈집을 하나씩 뜯어고치면서 ‘한달살기’나 ‘한해살기’와 같은 프로젝트들을 자체적으로 운영했어요.”

마을의 어르신들도 이미 인구 문제를 통감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의 유입이 없는 한 한평생 몸 바쳐 일궈온 자신들의 터전도 머잖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 것이다.

박씨는 농촌의 고령화로 마을 문화가 사라지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 박씨가 처음 바라본 마을의 모습은 소통 보단 농사일에만 매진하는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박씨는 소멸 위기에 처한 마을의 전통문화를 복원해나가기 시작했다.

박씨는 주민들과 함께 정양리의 대표행사인 대보름잔치를 복원하기로 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달집태우기부터 윷놀이, 투호던지기, 널띄기, 연날리기, 지신밟기 등 노인에서 아이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즐기는 즐거운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지신밟기는 현 주민들이 새로 온 귀농·귀촌 가정을 직접 방문해 농촌에 잘 정착하길 기원해주는 일종의 환영 행사이다. 마을이 이주민과의 화합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청년과 어르신들의 간극을 생각한다면 마치 한때 유행했던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흡사하다고 볼 수 있어요. 도시에서 온 청년을 맞이하는 일이 마치 화성인을 맞이하는 금성인이지 않을까 하는요.”

청년과 노년, 그 사이에는 중년이 있다. 살아온 시대와 문화, 사고방식, 가치관 등이 모두 다른 그들이었기에 중년은 청년과 노년을 잇는 매우 중요한 중간다리이다. 이 때문에 중년 이장인 박씨는 그들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에 전념하기로 한다.

80대 어르신부터 젊은 청년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하는 마을풍물패를 비롯해 주민들의 재능을 모아 만든 작은 동아리 모임들이 조금씩 운영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수학·논술 강의와 돌봄학교가 주민들 손에 의해 운영되면서 공동육아도 실현됐다. 마을 내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공유부엌, 공유카페, 빵집, 공방 등도 마을의 활기를 불어넣었다.

박씨는 소멸위기에 놓인 마을을 살리기 위해선 미시적 관점에서의 보다 두툼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정양리는 청년이 정주할 수 있는 지역 분위기와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어요. 하지만 민간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무엇보다 행정의 관심이 더 필요한 실정이죠. 시군 단위의 정책사업은 이미 틀이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 마을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중앙정부, 시군 단위의 거시적인 정책도 중요하겠지만, 삶의 현장과 가장 가까운 읍면 단위에서의 정책도 좀 제시해달라는 그런 바람들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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