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영씨, 빚만 느는 서울살이 청산하고 덕산 이주
대안학교 사감교사·농사 병행 예술 프로젝트 추진

서울에서 충북 제천시 덕산면으로 이주한 유혜영씨.
서울에서 충북 제천시 덕산면으로 이주한 유혜영씨.

살고 싶은 제주Ⅱ. 제주살이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13. 프로 n잡러 유혜영씨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속담이다. 예부터 출세를 위해선 한양땅을 밟아야 한다는 정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현재라면 이러한 속담은 시대에 역행하는 옛말에 불과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1년 6개월 전 대한민국 최대 도시 서울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충북 제천시 덕산면으로 이주해 자신의 꿈을 찾아 유영하는 청년 유현영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이 고향인 유씨는 덕산면에 위치한 대안학교인 ‘제천 간디학교’에서 청소년기 대부분을 보냈다. 간디학교를 졸업한 뒤 유씨는 덕산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청년 여성으로 사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유씨는 하루빨리 집을 나와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서울의 공기는 덕산보다 차가웠고, 유씨는 스스로를 쳇바퀴 안에 가둬버렸다.

“서울에서는 늘 돈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마이너스 통장도 만들었죠. 빚이 점점 쌓이는 생활을 했어요.”

유씨는 청소년기 때부터 춤을 좋아했다. 그래서 서울살이 도중 춤과 관련한 해외 유학을 잠시 다녀오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다시 서울에서 안무가, 댄서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활동했다.

“2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내가 단순히 무대에 올라 멋진 사람으로만 보여지고 싶지 않았어요. 그보다 나의 이야기, 내 친구들의 이야기,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예술로 담아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각 예술 전시 기획이라든지 예술 활동의 영역을 조금씩 넓히게 됐어요.”

그렇게 꿈과 빚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도시에서의 삶은 유씨를 계속해서 소진시켜 나갔다. 도시가 주는 만능주의가 결코 유씨에게는 만족감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에는 정말 편리한 것들이 많아요. 무엇이든 다 제 손안에 있고, 특별히 노력하지 않더라도 손 닿는 거리에 모든 것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게 편리함, 행복감, 만족감이라기보단 오히려 ‘자기효능감’을 떨어뜨리는 것이었어요. ‘다시 덕산으로 돌아갈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유씨는 자신보다 먼저 덕산으로 이주해 ‘농촌 살아보기’ 프로그램 하던 지인의 추천에 따라 서울에서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유씨는 지난해 초 지인이 살고있는 덕산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는 계속 춤만 추다 왔는데, 농촌에서는 내가 무얼 해야 할지 처음에는 막막했어요. 고민 끝에 ‘내가 진짜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여기서도 계속 해보자’는 마음에서 다시 예술 활동을 계획하게 됐어요.”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씨에겐 목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유씨는 자신이 졸업한 제천 간디학교에서 사감교사로 주말마다 일을 나갔다.

유씨가 본격적으로 예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예술 창작 수업 의뢰가 들어온 뒤부터다. 마음껏 뛰어놀 환경이 부족해 길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춤으로 풀어내는 프로그램을 유씨는 기획했다.

“덕산면에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공간이 부족했어요. 불현듯 ‘이 아이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그들의 이야기를 창작물로 표현해내는 과정을 수업시간 동안 진행하게 됐어요. 기간은 6개월 정도로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했어요.”

아이들의 시선으로 지역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그램이 유씨에게 굉장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그래서 유씨는 보다 다양한 지역의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시켜보자는 뜻에서 ‘갤러리 오지’라는 지역 기반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겨울부터 예술 활동을 기획했지만 ‘프로 n잡러’인 유씨 답게 농사일 또는 교사일에 치이며 이렇다 할 성과는 얻지 못했다. 그러나 유씨가 아직은 2년이 채 되지 않은 초보 귀농인인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활동도 더 뚜렷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섰다.

“마을의 한 어르신이 저에게 ‘일의 가치를 떠나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주셨어요. 그러면 그럴수록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농촌의 다른 활동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죠. 농촌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인 것 같아요. 때로는 그것이 저를 아주 많이 힘들게 해요. 하지만 농촌에는 ‘실패해도 괜찮다’고 응원해 주시는 어른들이 있고, 위로를 건네주는 동료들이 있어 잘 견뎌낼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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