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에 이끌려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농사 시작
농촌살이 10년 주거·교통·직업 마련에 ‘구슬땀’

베테랑 귀농인 엄지상씨.
베테랑 귀농인 엄지상씨.

살고 싶은 제주Ⅱ. 제주살이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14. 베테랑 귀농인 엄지상씨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에서 20대를 ‘청춘’이라 부른다. 식물이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동물이 알을 깨고 나와 성체가 되기까지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랴.

청춘들의 머릿속은 늘 ‘무엇을 할까, 내가 잘하는 것은 뭘까, 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어느덧 10년차 베테랑 귀농인이 된 엄지상(34)씨도 여느 청춘과 다를 바 없는 그런 20대를 보냈다.

엄씨는 24살 무렵 자신이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강원도 화천군으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귀농학교를 졸업한 뒤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 화천군 상풍리에 완전히 정착했다.

엄씨의 직업은 계절마다 달랐다. 본업이 농사인 엄씨에게 여름은 농부이며, 봄과 가을은 산불진화대원, 겨울은 백수이자 축제 아르바이트생이다.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한 지 6년이 지나 나름 안정적인 농가소득을 올리는 만큼 엄씨는 올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어엿한 사장님이 돼 있었다.

“저는 직업을 계절별로 가지고 있어요. 봄과 가을은 주로 산불진화대원으로 일을 합니다. 특히 올봄에는 산불화재가 많았어요. 그래서 저도 양주와 홍천, 화천에 불을 끄러 다녔습니다. 겨울이 되면 다시 백수가 됩니다. 화천에서 가장 크게 열리는 ‘산천어 축제’에 가서 주로 물고기를 빙판 아래 집어넣는 아르바이트를 하죠.”

고등교육을 마치고 성인이 된 엄씨는 마냥 놀고만 싶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권유로 스무살 군에 입대한 엄씨는 남들보다 일찍 전역한 탓에 대학엘 가서도 친구가 없는 ‘아웃사이더’로 남았다.

“학교생활에 재미가 굉장히 없었어요. 그렇지만 내가 이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앞으로는 서울에서 쭉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묵묵히 학교를 다니게 됐죠. ‘앞으로 뭘 해야 할까’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귀농·귀촌을 결심하게 됐죠.”

귀농·귀촌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다름 아닌 부모님이었다.

“24살쯤 부모님께 제 계획에 대해 말씀을 드렸어요. 3개월 동안은 부모님과 씨름했어요. ‘여기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말씀드리니 부모님께서도 끝내 두손 두발 다 들으시더라고요. ‘그래 그럼 한번 가봐라’ 이렇게 승낙을 얻어서 귀농하게 됐습니다.”

엄씨는 이주지를 선택하기 위한 자신만의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째 도시와 가까울 것. 둘째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일 것. 셋째 겨울만큼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어야 할 것.

“화천은 1시간 거리에 가까운 대도시인 춘천이 있었고 무엇보다 ‘비빌 언덕’이 되는 귀농학교가 있었어요. 또 겨울부터 봄까지는 농업 휴지기여서 이곳 화천에 뿌리를 박을 이유가 만들어졌죠.”

그렇게 엄씨는 화천 귀농학교에서 1년짜리 코스를 밟게 된다.

“제가 처음 화천에 갔을 땐 마침 겨울이어서 푸릇푸릇한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정말 삭막하더라고요. 그래서 ‘대체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고, 나는 여기서 뭘 해야 하나’ 그런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죠. 하지만 1년을 지내보니 마을이 너무 예쁜 거예요. 도시에 있으면 사계절을 잘 못 느끼는데 여기서는 봄이 어떻고, 여름은 어떻고, 가을과 겨울은 또 어떻고 계절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귀농 교육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학교도 제법 커졌다. 그러던 중 엄씨는 한 선생님으로부터 사무장 제의를 받게 된다.

“선생님께서 ‘사람이 필요하니 네가 일을 좀 맡아달라’고 하셔서 제가 사무장으로 들어가게 됐어요. 한 3년 정도 사무장직을 맡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농사를 짓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죠. 그렇게 수소문한 끝에 화천군 풍상리에 밭을 구하고 이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엄씨는 풍상리에서 2200평 규모의 밭과 비닐하우스를 매입했다. 엄씨가 진 빚은 집까지 합쳐 모두 3억원에 달했다.

“어느 순간 빚쟁이가 된 것이죠. 제가 산 땅이 원래 논이어서 굉장히 토질이 질어요. 그래서 밭농사가 잘되지 않았고요. 첫해는 수익을 못 냈고, 두 번째 해에는 100~200만원의 수익을 올렸어요. 세 번째 해는 폭우가 심하게 내렸어요. 아마 그해 전국이 물에 잠기고 그랬을 거예요. 작년과 올해가 되어서야 제법 수익이 나는 상황입니다.”

엄씨는 청년을 위한 농촌은 없다고 말한다. 이제 막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사회적 약자의 청년에겐 무엇보다 세심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다. 하지만 농촌의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는 것.

“청년이 농촌에 정착해 살기 위해선 주거·교통·직업 3가지가 필요해요. 하지만 지원을 운운하는 지자체의 정책을 보면 중복되는 것도 많고 또 너무 복잡해 과연 이게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청년은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에요. 이러한 청년들에게 도움의 손길도 제대로 닿아야지만 이들이 건장한 닭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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