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생태칼럼]

6~7월은 수국의 계절이다. 도로마다 정원마다 관광지마다 저마다 제일이라며 뽐낸다. 
그 중에서도 사려니숲길의 산수국이 단연 으뜸이다. 산수국의 형형색색에 저절로 발길을 멈추고 인증샷을 누른다. 또한 특별하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변종이 많아서 산수국 동호회가 생길 정도이다. 산수국의 꽃은 작은 꽃과 큰 꽃으로 이뤄져 있다. 가운데는 작은 별들이 촘촘히 모여 있는 듯하고, 바깥쪽에는 듬성듬성 큰 별이 떠 있다. 식물 생태학적으로는 작은 꽃들이 참꽃이고, 큰 꽃들은 헛꽃이라 부른다. 참꽃은 암꽃과 수꽃이 만나 수정하며, 꽃받침인 헛꽃은 사실상 가짜꽃이다. 하지만 헛꽃의 헌신이 독보적이다. 실제로 수정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참꽃의 수정이 끝나면 그 증표로 헛꽃은 스스로 뒤집어진다. 참 아름다운 장면이다.
산수국은 사람만큼 자라는 관목이지만, 잎이 무성하다. 대낮인데도 장난기 넘치는 아이가 산수국 잎 속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도깨비를 만난 것처럼 기절초풍한다. 헛꽃은 참꽃의 수정을 위한 벌들을 유혹하고, 조용히 밤을 기다린다. 밤에는 도깨비불처럼 하얀 헛꽃들이 반짝거리며 살아있음을 더 과시한다. 으스스한 비 날씨에 홀로 밤길을 걷노라면, 숲 속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모습과 함께 도깨비에 홀릴만 하다. 제주사람들이 산수국을 ‘도체비고장’이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깨비’와 ‘꽃’은 제주어로 각각 ‘도체비’와 ‘고장’이라 한다. 밤늦도록 산에서 일을 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헛꽃을 보고 헛것을 봤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수국을 보면, 함부로 건들지 않는다. 잎과 꽃이 워낙 빽빽하고 무성해서 잎사귀 안쪽을 들여다보는 게 불편하다. 수국이나 산수국을 살며시 방문하는 새가 있다. 섬휘파람새이다. 벌과 나비들이 헛꽃 주변에 모여도 관심 밖이다. 산수국을 찾은 먹잇감을 노렸다간 되레 천적에게 잡힐 걸 안다. 까마귀보다 작아서인지,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심이 많은 새다. 산수국의 향기를 맡는 조건으로 그의 벗이 되어준다. 보통 산새들은 키가 큰 나무의 가지에 둥지를 틀지만, 섬휘파람새는 산수국, 꽝꽝나무, 제주조릿대와 같은 키 작은 나무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알을 품거나 새끼를 키울 때에는 사람이나 천적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멀리 돌아서 둥지로 재빠르게 찾아간다. 산수국의 바람막이 덕분에 섬휘파람새는 따뜻한 여름밤을 보낸다.
그렇다. 자연은 서로 보듬으며 살아간다. 참꽃도 헛꽃도 곤충도 새도 제각각 사연과 위험을 안고 있지만, 서로에게 의지한다. 특히 작은 생명들은 서로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더 잘 챙기며, 오래 사는 법을 공유한다. 살다 보면, 세상과 단절하고플 때가 있다. 가짜는 진짜처럼 떠돌고, 진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양면성이 사회를 허튼 방향 대신에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산수국의 참꽃과 헛꽃이 함께 피듯이, 상생이 세상을 지배한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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