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생태칼럼]

연일 폭염주의보를 발령하고 있다. 가급적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안전문자를 보내지만, 굳이 은행에 가야 한다고 우기거나 산에 오르는 분이 더러 있다. 길을 걷다보면 잎이 무성한 그늘이나 건물 그림자를 찾게 된다. 
부채도 없고 바람도 불지 않으면 더더욱 발길이 무겁다. 교차로 횡단보도에 세워진 대형 양산 그늘막이 어찌나 고마운지 실감하게 된다. 예전 동네마다 마련된 팽나무 정자 쉼터는 바로 어르신들의 회의장소였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 집안에 머물지 않고 자연스럽게 폭낭(팽나무)으로 나오게 했다.
무더울수록 땡볕으로 나오는 동물이 바로 매미이다. 어찌나 신나게 우는지, 소음공해의 주범이다. 자연의 소리라서 행정기관에서 잡아주지도 못한다. 사람들이 그런 불편한 생각을 할 참에, 말매미는 오줌을 갈긴다. 사실 매미가 직박구리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피하면서 오줌을 싸는 것이다. 매미는 나무 기둥에서 수액을 빨아먹는다. 한 장소에 앉아서 울기 때문에, 직박구리한테 잡혀 먹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한바탕 웃는다. 곱게 입고 나오거나 과묵한 사람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해주니, 살짝 무더위를 잊게 해준다. 분명 팽나무 아래는 시끄러운 줄 알면서도 모이는 이유가 뭘까.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누다보면, 저절로 동네 사정을 알게 되고,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또한 그 쉼터에서 서로 간의 정보를 공유하고 마을의 주요 일들을 조정하고 투명하게 결정했다.
제주도에는 말매미를 포함해 참매미, 유지매미, 쓰름매미, 애매미, 털매미, 늦털매미, 고려풀매미 등이 분포한다. 이중 말매미는 몸집이 가장 크고 흔한 편이다. 몸 빛깔은 검고 광택이 나며, 날개가 투명하다. 매미는 수년간 땅 속에서 지내다가, 밖으로 나와서 울다 생을 마감한다. 살아있는 동안 나무 수액을 빨아먹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얼마 남지 않은 생애에 자손을 남기고자 수컷은 세상에서 가장 크게 울어댄다. 사람들에겐 시끄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말매미의 소리는 말[馬]울음소리 못지않게 우렁차다. 짧은 생애를 보상받으려는지 살아있는 동안 오래도록 우는 것이다.
매미도 다른 곤충류처럼 날개가 두 쌍이며, 앞날개가 더 길다. 말매미의 날개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앞날개는 겉날개이고 뒷날개는 속날개이다. 그물맥 날개가 겹쳐 있어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조선시대의 궁중 유물 하나가 익선관(翼蟬冠)이다. 이 모자는 조선시대에 왕과 세자가 곤룡포를 입고, 머리에 썼다. 모자의 형태가 두 단으로 턱이 지게 만들었으며, 바로 두 쌍의 매미 날개를 본뜬 것이다. 매미는 짧은 생을 살지만, 속과 겉을 숨기지 않는다. 세상엔 숨겨야 할 게 무궁무진하지만, 다 드러나는 게 세상사이다. 
때가 되면 무더위도 사그라들고, 말매미의 울음소리도 그친다. 
팽나무 그늘에 모인 어르신들이 부채질하며 세상을 다 꿰뚫어보는 것도 다 말매미 울음에서 얻은 지혜이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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