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생태칼럼]

‘몰타민 구중 생각난다’라는 제주 속담은 ‘말을 타면 궁궐로 들어가는 꿈을 꾼다’는 의미이다. 예전에는 말을 아무나 아무 때나 탈 수 없었다. 심지어 말을 기르면서도 말에 올라탈 수 없었다. ‘몰탄 양반, 쉐 탄 귀양다리’라는 속담은 ‘말을 탄 양반은 부귀영화의 상징이고, 소를 탄 양반의 처지는 그야말로 귀양살이 할 정도로 초라함’을 뜻한다. 승용차로 대체되기 전까지는 결혼식 당일에 신랑은 말을 타고 신부집을 향했다. 그만큼 말을 탄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말을 타게 되면 목에 힘이 들어가고 우쭐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제주 사람들에겐 말이 익숙하다. 몽골 초원에 가도 말을 잘 탄다고 칭찬을 받을 정도이다. 말과 관련된 속담, 지명, 생업, 애환, 경관 등 문화자원이 풍부하다. 영주십경 중에 말과 관련된 풍광이 고수목마(古藪牧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탐라지, 남환박물, 탐라지초본, 제주삼읍도총지도 등 고문헌이나 고지도에 지명 뒤에 ‘藪(수)’자가 달린 여러 지명들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제주의 고수는 어떻게 변해 왔을까. 말을 방목하면서 원래 숲을 어느 정도 개간했거나 말에 의해 자연적으로 전이되어 갔을 것이다. 고수는 옛숲 또는 천연림을 말하며 방목하기 전인 지금의 곶자왈과 같은 천연숲이었다. 조선시대에 한라산 중산간 전역을 중심으로 말을 방목했다고 생각하면 아무 오름에 올라서도 그 범위와 풍광이 일품이었다. 1702년 이형상 목사가 남김 탐라순력도 산장구마를 보면, 목장의 크기가 성판악에서 교래리 마을까지의 산림환경이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교래대렵(橋來大獵)의 장면에서도 보듯이, 동원된 720여 명 중에 마군 200명이 광활한 들판을 달릴 수 있었던 것도 오름과 오름 사이를 목장지대로 꾸준히 관리해왔음을 입증한다. 응와 이원조 목사가 탐라록에 남긴 영주십경 중에 ‘대수목마(大藪牧馬)’는 그 규모가 조선후기까지 대단했음을 보여준다. 
예나 지금이나 제주 사람들에겐 말은 큰 재산이다. 탐라국의 삼성신화에 등장하는 망아지를 비롯해 마불림제(백중제), 헌마공신 김만일, 바령팟, 방애불 등과 같은 마문화 유산이 축제, 레저, 힐링, 에너지 등 미래형 콘텐츠로 탈바꿈하고 있다. 한 때 마을 목장부지가 골프장으로 개발되기도 했지만 최근 첨단산업기지의 터전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보릿고개 그리고 장마와 무더위를 이겨내고 황금물결을 이룬 들판을 보노라면 절로 기운이 난다. 
오름마다 피어오는 억새들도 마냥 춤을 추고, 곶자왈엔 우주에서 온 햇살을 쬐는 말들도 왕성한 기분이다. 풍족하고 넉넉하면 어려운 이웃을 먼저 배려하는 대신 자기 욕심이 강해진다고 하지만, 말을 탈수록 사방을 더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너도 나도 말을 타는 시대를 맞아 허황된 말보다 더 멀리 그리고 더 담대하게 헤아리는 안목과 실행이 절실할 때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이학박사>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