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생태칼럼]

웃드리에서 공부하는 선흘초등학교 아이들이 해안가를 찾았다. 여름 내내 먼물깍 습지에서 팔색조와 긴꼬리딱새를 듣다가, 저어새를 만나러 왔다. 하도리 창흥동 습지의 옛 이름은 넓은 갯벌 지대라서 ‘펄개’라 했다. 연안에서 내륙 쪽으로 발달한 지형이며, 마을 안쪽에는 펄갯산물, 탕탕물, 서느렁물 등의 용천수가 있다. 지금은 용천수 양도 줄고, 마시지도 못할 정도로 푸대접을 받고 있다. 지역 주민은 발길을 끊은 지 오래고, 오히려 외방에서 온 손님들이 갸우뚱하며 발길을 멈춘다. 아이들이 용천수 속에 있는 방게와 말똥게 그리고 검정망둑어를 보고 신났다. 직접 채집해보고 자세히 들여다본다. 잔뜩 긴장했는지 깅이(게)는 연신 다리를 움직인다. 시커멓게 보였던 검정망둑어도 가까이서 보니, 정말 찬란한 빛깔을 내었다. 채집통에 있던 친구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즈음에, 멀리 피신했던 생이(새)들도 아이들의 태도를 보고 차분해졌다.
올렝이(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 왜가리, 물수리 그리고 저어새들이 다시  한번 아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암컷 청둥오리는 부리를 등 뒤로 제키고 잠을 자는 동안, 일곱 마리의 수컷들은 주변을 보초서고 있었다. 물수리가 사냥을 앞두고 돌담에서 깃털을 다듬느라 아이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낮잠과 먹이활동에 집중하다가 간혹 물수리한테 당한 적이 있어서, 청둥오리는 살짝 눈치 보는듯한 표정이다. 가마우지는 맞바람을 맞으면서 양 날개를 폈다가 접으면서 존재감을 뽐낸다. 왜가리는 긴 목을 움츠렸다가 물속으로 잽싸게 뻗고는 긴 부리로 어린 숭어를 낚아챈다. 밥자(밥주걱)를 달고 다니는 저어새 무리는 한 군데에 몰려있다. 번식지에서부터 줄곧 함께 놀아온 터라, 월동지에서도 같이 있어야 안전하다. 고향에선 만난 적이 없던 노랑부리저어새를 아무런 조건없이 보살펴주기까지 한다. 참으로 아름답고 경이로운 모습에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숙연해진다.
이게 다 습지가 안겨준 선물이다. 육지부의 강 하구에 생긴 넓은 갯벌 못지않을 정도로, 제주의 연안습지와 용천수 습지는 생물다양성이 높다. 물이 귀했던 제주 사람들은 솟아나는 물에 의지했기에, 특히 용천수는 산에서 흘러오는 물이면서 살아있는 물이기도 해서 ‘산물’이라 할 정도로 신주 다루듯이 정성을 다해 지켜왔다. 습지에 살거나 주변 생물에게도 제주어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니 용천수 하나가 사라지면 그 속에 생물들이 죽어갈 뿐만 아니라, 거기에 얽힌 제주 사람들의 추억과 제주어도 사라진다. 자연의 선물이 소중하듯, 어르신들이 물려준 용천수도 귀한 보물이다. 용천수는 숱한 생명들의 피난처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제주 사람들의 애환, 지혜, 철학 그리고 미래까지 담겨 있다. 예전처럼 용천수 소리가 탕탕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학교 밖의 저어새를 만날수록 습지와 새 그리고 제주어를 살리는 지름길이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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