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생태칼럼]

육지엔 바다에서 아홉 마리가 승천했다는 구룡표가 있다면 제주엔 구룡이 좌정한 거문오름이 있다. 조천읍 선흘2리에 위치한 거문오름 용암길에는 청룡음수봉을 비롯해 백룡망해봉, 황룡토기봉, 회룡고조봉, 자룡고모봉, 적룡출운봉, 와룡농주봉, 흑룡상천봉, 회룡은산봉 등 9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용들이 승천하지 않고 여의주를 품은 형상이다. 거문오름 그 자체가 바로 여의주인 셈이다. 여의주를 물고 가는 대신에 인간 세상을 돌보기로 결심한 탓에 여의주는 빛났고 용들도 배고플 새 없이 신났다. 사실 거문오름이 천연기념물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에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불을 품고 올라온 거대한 화산섬이 세계인의 가슴에 불을 지피게 된 연유가 다 용들의 용기와 희생 덕분인가 싶다.
천지연 폭포에 가면 용의 여의주를 만질 수 있다. 순간 살아온 날들이 엄습해온다. 부정한 짓을 숨기고서 여의주에 손을 대려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용들이 노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저절로 느끼게 된다. 먼 옛날, 천지연에 살던 이무기가 한 청년의 못된 모습을 희생삼아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덕분에 아름다운 여인의 목숨이 구사일생했으며 용이 두고 간 여의주 덕분에 나날이 만사형통했다. 인간세상의 더러움을 보고도 못 본 체하면 용 자신도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직감한 것일까. 물이 더러워지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기 때문에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인간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하늘로 올라가 세상을 굽어 살펴야 만이, 더 이상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는 용의 결단에 엄숙해진다. 용눈이오름은 하늘에서 보면 어떤 모습일까. 다른 용들이 다 승천하려고 기를 쓰는데, 한가로이 누워있는 용을 보고는 옥황상제마저 용서했다고 한다. 세상을 달관하듯, 욕심을 내려놓았던 것이다. 지나가던 파랑새도 호랑나비도 깨워본들 소용이 없었다. 하늘로 올라가 구름도 되어주고 비도 뿌려주어야 뭇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을 수 터인데, 정말 야속할 따름이었다. 사실 용눈이오름의 용은 여의주를 등 뒤에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여의주를 입에 물고 가기에는 워낙 크고 무거웠다. 혹여 여의주를 보고 전쟁이 날까봐, 여의주를 감추려고 숱한 짓밟힘도 참아낸 것이다.
복권을 구입했다고 다 로또에 당첨에 될 수 없듯이, 여의주를 가져야 만이 소원이 다 이뤄지지 않는다. 설령 여의주를 가진다 해도 구슬을 탓할 수도 있다. 가질수록 욕심은 한없이 늘어나는 법이다. 이무기가 하늘로 가는 무지개 기차를 타기 위해 천년동안 하늘 아래에서 숨을 참았듯이, 지극정성을 다해야 뜻을 이룰 수 있다. 용의 해를 맞아, 용들이 승천하는 모습을 부러워하기 전에 용들의 소원을 들어주면 어떨까. 용못이 좁아지고 사라지면, 용도 사람도 살아갈 수 없다. 승천하지 못한 용들이 오랫동안 평안히 누워 있어야 세상이 평온해질 수 있다. 
거문오름과 용눈이오름 그리고 천지연의 여의주를 탐하는 순간, 모든 걸 잃을 수 있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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