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생태칼럼]

40년 전 제주에선 민속자연사박물관과 우당도서관 개관, 전국소년체전 개최, 성읍민속마을 문화유산 지정, 만장굴 관광단지 개발 승인, 행정 컴퓨터 첫 도입, 풍력발전 시작 등 제주 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사업들이 펼쳐졌다. 시작은 미천했지만, 제주 미래의 성장을 위한 견인 역할을 충실히 해 온 덕에 제주도가 ‘세계 속에 섬이 아닌, 세계가 섬으로’ 주목 받을 정도로 성장하게 됐다.
제주섬은 태평양을 향해 순조롭게 항해하는 듯했지만, 모두의 기억 속에서 한 달도 안 돼 찬밥신세로 전략한 존재가 있었다. 바로 ‘체전비둘기’이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전국소년체전이 제주에서 열리게 되자 참가 선수들보다 먼저 제주에 도착한 비둘기였다. 인천과 부산에서 들여온 집비둘기 수백 마리가 애지중지 사육되다가 행사가 끝나자마자 제때에 먹이도 주지 않는 등 몰인정한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공설운동장을 비롯해 신산공원, 용두암, 부두 등에서 집비둘기를 대할 때 마다, 죄인 마냥 부끄럽다. 오히려 머리를 연신 끄덕이며 ‘괜찮다고 잘 살고 있다, 안녕’하고 되레 인사를 건넨다.
비둘기로서는 너무나 억울하다. 소년체전을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높은 사람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토사구팽당한 꼴이 됐다. 특히 동물에 대한 사랑이 그렇다. 반려동물과 실험동물 그리고 관상동물은 그들의 건강과 복지보다는 인간의 행복지수와 생명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 왔다. 가장 가까이 보살피는 동물에 대한 학대와 유기에 대한 뉴스가 연일 이어지고 때로는 야생동물의 죽음을 재촉하는 몰지각한 행위에 아연실색 할 지경이다. 최근 투명벽에 의한 야생조류 충돌, 해양쓰레기에 의한 바다생물 위협, 육상 오염원 유입에 의한 습지생물 감소, 기후위기에 따른 생물상 변화 등은 다 인간의 문명이 불러온 탓이다. 우리의 무관심과 절망감이 클수록 동물의 생존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 제주 바다의 남방큰돌고래도 그렇다. 제주의 해녀와 바다거북과 함께 공존해온 덕에 남방큰돌고래는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됐으며 제주에서는 생태법인 자격을 부여할 예정이다. 과거 제천비둘기처럼 애물단지 전철을 밟지 않길 바라며 그 첫 시험대가 바로 남방큰돌고래 ‘종달’이다. 지난해 11월 1일 구좌읍 종달리에서 꼬리에 폐그물이 걸린 채 유영한 지 80여일 만에, 민관합동으로 구조에 나섰다. 천만다행이다. 구조 직전까지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정형행동에서 벗어나 기운을 회복하고 있다. 자기 몸체보다 긴 폐그물을 제거했지만 일부는 아직도 신체에서 떼어내지 못했다. 대정읍 해안에는 남방큰돌고래의 무사안녕을 빌기 위한 탐방객들로 붐비고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선뜻 나선 구조 활동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하루속히 종달이가 동료들과 함께 태평양에서 오래도록 헤엄치길 바란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이학박사>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