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모나스티르(Monastir)

튀니지에서 제일 존경받는 인물은 하비브 부르기바 초대 대통령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비브 부르기바 초대 대통령의 고향인 ‘모나스티르’에 가보고 싶었다.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르와지 승합버스를 타면 ‘모나스티르’까지 2시간에서 2시간30분 정도 걸리지만 더 시간이 걸리는 기차 여행을 하고 싶었다. <편집자주>

▲ 모나스티르 시내 중심가 모습

▲튀니지의 금전 표시법
바로셀로나 튀니지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시간을 알아보았더니 아침 8시에 ‘모나스티르’로 출발하는 완행기차가 있었다. 기차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일부러 2등석을 구입했다. 탑승권에 ‘9650디나르’라고 찍혀 있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5790원이다.

튀니지에서는 돈을 계산할 때 컴머(,)나 피리어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단위를 표시하는 법을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은행에 가서 돈을 인출 할 때 1,000$하고 적어서 주면 1$만 준다. 튀니지에서는 1,000$를 찾으려면 1.000,000$라고 적어야 한다.

한번은 사과를 사는데 상인이 계산기로 5,500이라고 보여주었다. 세상에, 사과가 이렇게 비싼가하고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뒤에 0 표시 3개는 ‘밀림’이라는 화폐 단위를 표시한 것이었다. 튀니지에서는 ‘디나르’ 다음에 컴머를 사용해 ‘밀림’을 표시한다.

사과가격을 정확히 이야기하면 5디나르 500밀림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튀니지에서 한동안 화폐 단위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튀니지 화폐는 요즘 환율로 계산하면 1디나르는 600원(환율은 변동 됨), 10밀림은 60원, 100밀림은 1디나르가 된다.

의 능묘

▲제주와 비슷한 인구를 가진 도시
2등석 칸의 덜그럭 덜그럭 거리는 소리는 나에게 낭만이었다. 기차는 완행이어서 그런지 도착 예정시간 보다 1시간 정도 늦었다. 그래도 느릿하게 달렸기 때문에 튀니지의 시골 풍경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모나스티르 주(Monastir Governorate)는 튀니지의 북동부에 있다. 주도는 모나스티르이다. 인구는 66만명으로 제주와 비슷하다. 모나스티르의 11월의 온도는 평균 27°c에서 21°c여서 여행하기에 아주 좋다.

▲ 모나스티르의 메디나(구 도시)에 음식을 파는 가제

모나스티르 기차역에서 하비브 부르기바 초대 대통령의 영묘를 가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가까운 거리라면서 걸어서 가라고 했다.

튀니지 독립전쟁의 영웅인 하비브 부르기바 초대 대통령은 1903년 8월 3일에 태어나 2000년 4월 6일에 서거하면서 고향에 묻혔다. 튀니지 사람들은 영묘를 보기 위해 이곳까지 몰려든다.

▲튀니지 인들이 존경하는 대통령
하비브 부르기바 초대대통령은 1957년 7월 25일부터 1987년 11월 7일까지 튀니지 공화국의 첫 번째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았다. 영부인도 프랑스인이고, 여성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 재임 기간, 모든 국민이 6세부터 대학 졸업까지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완비했다. 아랍국가 최초로 이슬람의 일부다처제를 폐지하고 남녀평등과 여성의 사회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한 지도자였다.

그런데 이 능묘는 그의 사후 지어진 것이 아니라 1963년 재위 기간 중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능묘는 입구부터  웅장하고 화려했다. 능묘에는 하비브 부르기바 대통령과 그 식구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지금은 이 영묘가 모나스티르의 최고 관광지이자  유명한 성지 순례지로 되어 버렸다. 튀니지에는 지방마다 그의 이름으로 된 도로들이 있고, 그를 추앙하기 위해 튀니지 곳곳에는 인자한 웃음을 띤 대통령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능묘를 관람하는 입장료는 무료였다. 능묘 안으로 들어서는데 입구에 서있던 관리인이 나에게 다가오면서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2층으로 올라갔더니 26회에서 소개한 ‘시디 부 사이드③ 꽁꽁 숨겨 있는 궁전 ‘은네즈마 은자하라 팔래스’의 침실에서 본 문양과 똑 같은 문양이 눈에 띄었다. 그 문양은 모두 순금이라고 했다.

▲ 얼마전에 세워진 튀니지 초대 대통령 동상.

▲탑수스 전투가 일어났던 곳
능묘에서 나와서 조금 걸어가니 항만이 나왔다. 역시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바라보는 지중해의 바다는 물고기들이 보일 정도로 청정하다. 마리나 항구에는 27회에서 소개한 비제르트(Bizerte)에서 보았던, 옛 중세시대를 느낄 수 있도록 제작 된 함선이 정박되어 있고 유럽에서 넘어온 마리나 선박들로 가득 차 있다.

모나스티르에서는 기원전 46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민중파와 공화정 원로원파 간의 내전이 벌어졌다. 세계사에서는 이를 ‘탑수스 전투’라고 한다.

 '탑수스(Tapsus)‘는 카이사르가 원로원에 대승해 독재를 실현했던 튀니지의 고대 도시국가다. 탑수스 전투에서 승리한 카이사르는 로마 세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등극했다.

바닷가를 조금 걸어 나오니 거대한 성이 보였다. 그 성은 해변을 끼고 있는 모나스티르의   리바트이다. 리바트는 성채를 뜻한다. 카스바는 일반적으로 방어를 위한 성채이고 리바트는 종교시설을 겸하는 곳이라서 망루가 별도로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의 리바트는 8세기인 서기 796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계속적으로 증축과 구조 변경이 이루어지면서 음악회가 열리기도 하고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하필 리바트가 보수 공사 중이어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갑자기 날씨가 안 좋고 비가 올 것 같이 하늘이 컴컴해진다. 사진을 찍기가 어렵다. 늦기 전에 튀니스로 돌아가기 위해 리바트에서 한참을 걸어서 시내로 들어서니 아주 긴 성벽이 보였다. 이 성안이 과거의 도시다. 이곳을 모나스티르의 메디나(구 도시)라고 한다. 메디나 성문을 통과하면서 과거 속으로 순간 이동을 기대했는데 메디나 안은 거의 현대화되어 있고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성안에 들어서자 바로 보이는 이슬람사원은 그레이트 모스크(Great Mosque)이다. 튀니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모자이크들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답게 이곳 메디나에 있는 토산품점에서도 예술적 가치가 있는 모자이크들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메디나는 한산했다. 터키식 케밥과 샤와르마 리바니와 샤와르마 다보나를 파는 식당도 한산했다. 터키식 케밥은 오스만제국이 이곳을 지배하면서 남긴 음식 문화인데 이젠 튀니지 인들이 고유 음식이 되어 버렸다.

튀니스로 돌아 갈 때는 르와지를 이용했다. 여행을 할 때마다 느껴지는 것이지만 오늘도 지중해의 청아한 풍광과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지는 역사의 흔적에 빠져서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여행하는 즐거움인 것 같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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