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주형무소 터 및 희생자지역 순례 ⓵진상규명
남성 신위 처음 오른 4·3전주형무소 희생자 진혼제
법무부 재소자인명부서 양낙구·김병천 수감 사실 확인

올해로 4·3항쟁 75주년을 맞았지만, 낯설고 물설은 전라남도 전주형무소로 끌려와 지금까지도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이 있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1~3일까지 전주형무소 터와 희생 지역을 순례했다. 2001년과 2007년, 2014년에 이은 네 번째 방문이다. 이번 순례에 동행한 제주매일은 전주 지역의 희생 실상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4·3도민연대가 1일 오후 전주시 황반산 기슭에서 전주형무소 희생자 진혼제를 봉행하고 있다.
 4·3도민연대가 1일 오후 전주시 황반산 기슭에서 전주형무소 희생자 진혼제를 봉행하고 있다.

4·3사건 당시 132명의 제주 여성이 수감 된 것으로 알려진 전주형무소에는 제주 청년들(양낙구·김병천)도 수용됐던 사실이 4·3도민연대에 의해 확인됐다. 옛 전주교도소 재소자인명부와 전주지방검찰청 형사사건부 자료 문건에서 이들의 이름을 찾아낸 것이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달래기 위해 본격적인 진상규명을 벌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이들의 수감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부가 4·3희생자로 공식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정부 공인=명예회복’이라는 등식과 결부된다는 점에서 단 한 명의 억울한 영령이 없도록 정부 차원의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들 희생자 중에는 1948년 9월 23일 제주4·3사건 당시 “제주도민 30만명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고 강조한 조선경비대 제9연대장인 박진경 암살에 가담했던 양회천 이등상사도 포함됐다. 전라남도 보성군 출신인 양회천 이등상사는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와 함께 상관인 박진경 저격에 가담한 죄로 이곳 전주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중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전주 지역군에 의해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사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전주형무소 터와 희생지역 순례에는 전주형무소에서 옥사한 김병천씨의 아들인 김광우 전 제주4‧3행불인유족협의회장도 동행했다.

4·3도민연대가 1일 전주시 황반산 기슭(효자동 공원묘지)에서 네 번째 4·3전주형무소 희생자 진혼제를 봉행하면서 처음으로 양낙구, 김병천, 양회천 3명의 남성 이름을 신위에 올린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한국전쟁 이후 전주형무소 수감 좌익사범 1400여 명은 한국군에 의해 학살됐다. 또한 북한군은 같은 해 9월 15일 UN의 인천상륙작전으로 9월 26일 퇴각하면서 전주형무소 수감 민간인 500여 명을 집단 학살했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약 1000여 명을 수용했던 전주형무소는 전라북도 전주시 전북동 322번지에 위치했다.

전주형무소에 수감 중인 남편 면회를 갔다가 재소자들이 군용 트럭에 실려 가는 것을 목격한 아내와 전주형무소 형무관, 전주 주둔군인 등 참고인 진술에 따르면 이들은 1950년 7월 초순부터 중순까지 군인(육군 7사단 제3연대)들에게 끌려간 후 공동묘지 등에서 집단 사살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광주 목포 순천 전주 군산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2020년 상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전주형무소에는 약 1900여 명이 복역했고, 이 가운데 1400여 명 정도가 좌익사범이었다. 제주4·3과 여순사건, 보도연맹사건 등에 연루돼 수감됐다.

제주사람들과 죄익사범들의 학살 시기와 장소는 1950년 7월 4일부터 20일 사이로, 황방산 기슭 효자공원과 전주농고 동쪽 기슭 야산에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무소 수감자들을 처형한 군부대는 제7사단 3연대와 5사단 15연대 헌병대다.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는 정부와 행정당국의 진상규명 노력과 관심 부재에 아쉬움을 표했다. 도민연대가 4·3유적지 순례와 진혼제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것도 정부가 관련 역사를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겨주길 염원하는 마음에서다.

양 대표는 “4·3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 진상규명 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며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죄가 없다’는 것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가 죽였느냐, 가해 책임이 있느냐’를 밝혀야 한다. 그러나 정부도, 우리 조차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이어 “이를 밝힐 수 있는 기록이 없는 게 아니다. ‘헌병대장’ 같은 문건만 봐도 많은 정보가 있다”면서 “이런 문건은 민간 조사단에서 접근할 권한이 없다”며 정부 차원의 노력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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