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주형무소 터 및 희생자지역 순례 ② 아픈 역사 기억해야
4·3도민연대 전주형무소 터 등 8개 지역 방문…안내판 2곳뿐
“현장이 가진 기억 역사의 근거…과거와 끊임없이 대화해야”

이곳은 전주형무소 재소자 학살 당시 1500여 명이 사살된 형무소 인근 야산과 공동묘지가 있었던 자리다. 현재는 한전 전북본부와 아파트 등이 들어서면서 옛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이곳은 전주형무소 재소자 학살 당시 1500여 명이 사살된 형무소 인근 야산과 공동묘지가 있었던 자리다. 현재는 한전 전북본부와 아파트 등이 들어서면서 옛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반촌4길, 5길, 6일 일대, 현재 전주동부교회 뒤쪽 일대, 지번 주소는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322. 전주형무소가 들어섰던 자리다.

제주매일은 지난 1일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와 함께 이곳을 찾았지만 교회와 주택가가 들어서면서 전주형무소가 들어섰던 옛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전주형무소는 일제강점기 당시 광주 감옥 전주분감으로 진북동 322번지 일대 1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건축됐다. 1923년에 들어 전주형무소로 개칭했다. 한국전쟁 직전에는 4·3사건으로 끌려온 제주 사람들과 좌익 정치범 등 1400~1600여 명이 수용됐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7월 14일까지 이들 전원이 사살됐다.
재소자의 대표적인 학살지는 전주형무소 인근 황방산 기슭과 전주교도소 인근 공동묘지다. 황방산 기슭은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3가 일대로 전주형무소와 5㎞ 가량 떨어져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전주형무소 학살사건 현장의 대표적 학살지다.

황방산 기슭 입구에는 ‘이곳은 1950년 6월말부터 7월 20일까지 전주형무소 수감자 1400여 명이 무고하게 집단 희생된 지역으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국가차원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안내판을 볼 수 있었다.

지난 2019~2020년 1·2차 발굴과정에서 유해 78개가 발견된 이후 올해 3차 발굴조사에서 민간인 희생자 유해 100여 개체가 추가로 발견됐다.

희생자는 자신의 묻힐 곳을 스스로 파고 그 자리에서 사살됐다. 희생자의 주변에서는 M1소총 탄피와 칼빈소총 탄피 등 당시 군인 또는 경찰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무기류도 같이 발견됐다. 발굴된 유해는 세종시 추모관에 보관됐다.

아이러니하게도 황방산에는 장례식장과 납골당을 비롯해 많은 무덤들이 들어서 있는 광경이 씁쓸했다.

이튿날인 2일 형무소 인근 야산과 공동묘지를 찾았지만 옛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장소는 당시 전주형무소에서 전주농고를 거쳐 직선거리로 2㎞ 남짓 떨어진 곳이다. 전주지 덕진구 인후동 2가에는 한국전력 전북본부와 아파트 등이 들어섰다.

형무소 간수 말에 의하면 당시 정치범들은 1950년 7월 4일부터 16일까지 형무소 인근 공동묘지에서 광주 5사단 15연대에 의해 정치범 1500여 명이 학살됐다고 증언했다. 당시 재소자는 1900여 명인 것으로 전해진다.

옛 전주농고 야산은 현재 전주생명과학고와 전주동북초등학교 사이 야산인데 당시 형무소와 약 1㎞의 직선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곳 역시 1950년 7월 4일부터 14일까지 수시로 학살이 자행됐다. 2019년 전주시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조사에서 동네주민들은 생명과학고(옛 전주농고)에서 전주동북초로 가로질러 갈 때 유골들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고 증언했다.

당시 형무소와 직선거리로 약 3.5㎞ 떨어진 소리개재는 황방산 지경과 같이 1950년 7월 20일 막바지에 이르러 학살이 자행된 장소다. 이곳에서 경찰이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을 했다. 전주시가 2019년과 2020년 황방산 일대와 더불어 이곳 소리재개에 발굴조사를 시행했지만 아무런 유해나 유품을 수거하지 못했다.
지역의 대표 명문고인 전주고등학교는 형무소로부터 직선거리 800m에 위치했다. 당시에는 전주고가 전주북중이었는데 광주5사단의 15연대가 주둔했다. 이는 7사단 재편성을 위해 전주북중 교정에서 대대적인 학도의용군 모집을 행했다는 당시 학도의용군의 증언으로 알려졌다.

학교 정문에는 1968년 11월 3일 충남 서산지구 무장공비 소탕작전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한 소병민 중령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 건립됐는데 한국전쟁 당시 무고한 자국민들을 학살한 15연대가 주둔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전주 한옥마을 인근에 있었던 전주법원은 건물 노후화로 다른 곳으로 옮겨졌으며 지금은 KT플라자 전주지점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현재 전주한옥마을 내 전주초등학교는 옛 전주경찰서였다.

이번 전주형무소 재소자 학살 사건 순례와 관련해 8곳의 지역을 방문했지만 안내판이 들어선 건 2곳 뿐이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이자 현장이 가진 기억은 역사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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