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주형무소 터 및 희생자지역 순례 ⓷ 사라져버린 이름
고 양회천 이등상사 조카 양승찬씨 “의로운 죽음 선택으로 4·3 학살 덜한 것”
양동윤 대표 “애국전사들, 반역의 역사로 기억돼선 안 돼…흔적 찾아 전파할 것”

고(故) 양회천 이등상사(오른쪽 사진)의 조카 양승찬 씨가 제주4·3 도민연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故) 양회천 이등상사(오른쪽 사진)의 조카 양승찬 씨가 제주4·3 도민연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주 사람은 알아야죠. 이런 의로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제주4·3 학살이 덜했던 것은 분명해요. 다른 시도는 아니더라도 제주도는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진상규명에 나서야 합니다.”

고(故) 양회천 이등상사의 조카 양승찬 씨는 제주도에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대표 양동윤)는 지난 1~3일까지 전주형무소 터와 희생 지역을 순례한 자리에서 양씨와 인터뷰한 영상을 최초 공개했다. 인터뷰는 지난 8월 27일 광주에서 진행됐다.

양회천 이등상사는 1948년 9월 23일 제주4·3사건 당시 “제주도민 30만명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고 강조한 조선경비대 제9연대장인 박진경 암살에 가담했다.

전라남도 보성군 출신인 양 이등상사는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와 함께 상관인 박진경 저격에 가담한 죄로 이곳 전주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중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전주 지역군에 의해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사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진경은 4·3사건 당시 제주 주둔 사령관으로 부임하자마자 40여 일만에 제주도민 6000여 명을 체포한 공적으로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이런 박진경 연대장을 저격해 군법회의에서 대한민국 제1호 사형수가 된 문상길 중위는 손선호 하사와 함께 경기도 수색 지역에서 총살됐다.

무고한 제주도민 희생을 막으려 의로운 거사를 행동으로 옮긴 이는 문상길 중위, 손선호 하사, 양회천 이등상사, 강승규 일등중사, 신상우 일등중사, 황주복 하사, 김정도 하사, 배경용 하사, 이정우 하사 등 9명이다.

박진경은 그의 고향 남해에서는 ‘창군 영웅’이라고 칭송되고 있지만 대다수의 제주도민 입장에서는 탄압의 가해자다.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민 30만명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는 9연대장 취임 일성은 ‘대학살의 전주곡’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박진경은 창군영웅으로 현충원에 국가의 보위를 받으며 이름이 새겨져 있고, 고향 남해군민공원에는 4·3에 대한 왜곡된 기록과 함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광폭한 탄압의 현장이었던 제주 땅에서도 그를 추모하는 비석은 양지바른 곳에서 여전히 건재하다.

반면 박진경을 암살한 이들의 의로운 행동은 거의 조명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반역자로 낙인찍히면서 그 흔한 비석조차 남기지 못하고 있다.

양회천 이등상사의 조카인 양승찬 씨는 “삼촌(양회천 이등상사)의 사진은 딱 한 장 남아있다”며 그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양회천 이등상사의 어릴 적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할아버지가 너무나 괴로워서 사진을 모두 없앴다는 것이다. 호적에도 이름이 없다.

양씨가 기억하는 삼촌은 소위 말하는 ‘인싸’ 기질이 다분한 멋쟁이였다. 남자다운 모습에 일본에서도 여자들이 많이 따랐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해방 후 한국인 인솔자로 고국으로 돌아왔다.

양씨는 “삼촌은 4·3 탄압이 심할 때 제주도로 발령됐다. 박진경은 순박한 아낙네를 쌍권총으로 쏴 사살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도 그 자리에서 사살했다. 이렇게 무자비하게 민간인을 죽이는 모습에 삼촌은 ‘진압이 아니라 민간인들을 죽이는 일이다. 사상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잘못됐다’는 고심을 거듭한 끝에 거사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상사 살해 사건에 연루돼 아들이 구속되자 당시 면장이었던 아버지가 탄원서를 올리면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양씨는 전주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군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은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다.

조카 양씨는 “시신이라도 찾았으면 묘비라도 세웠을 텐데…. 할아버지는 상당한 슬픔에 호적에서 지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삼촌을 비롯한 의로운 행동을 한 자들이 상관을 죽였다는 이유로 다 묻혔다. 그러나 제주도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이들의 거사로 인해 그나마 덜 희생된 것은 사실이다. 다른 시도는 아니더라도 제주도에서 만큼은 밝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방부나 보훈처는 상사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외면하는데 자신의 상관을 때려잡은 전두환, 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은 왜 조명하느냐”며 “거사를 했던 분들의 명예를 되찾아줘야 한다. 상관이라고 해서 잘못된 행동에 눈감는 것이 아니라 의로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라고 말했다.

양동윤 대표는 “의로운 죽음을 선택한 애국전사들이 반역의 역사로 기억되게 놔두지 않겠다”며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 흔적을 찾고 전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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