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돌문화공원, 전통문화예술 1번지를 꿈꾼다④
입주작가들 매달 운영한 ‘문화가 있는 날’ 문화체험 프로그램 ‘인기’
고즈넉한 풍경에 잠겨 작품활동하고 힐링하며 재충전의 여유 ‘호사’

파란 하늘 아래 둥글둥글 정겨운 제주돌문화공원 전통초가마을 '돌한마을' 전경.
파란 하늘 아래 둥글둥글 정겨운 제주돌문화공원 전통초가마을 '돌한마을' 전경.

새파란 하늘 아래 오름처럼 둥글둥글한 초가들과 초가 벽면에 올라온 담쟁이, 지난 가을 화려하게 꽃 피웠을 꽃나무들. 제주돌문화공원 내 제주전통초가마을 ‘돌한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정겨운 풍경들이다.

지난 11월 29일. 이 그림 같은 풍경을 눈에 담으며 돌한마을을 찾는 발길이 분주했다.

제주돌문화공원 입주작가들이 지난 9월부터 매주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마다 관람객들을 위해 진행한 체험프로그램의 마지막 행사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초가 작업실 바닥을 닦으면 청소할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현민정 작가.
초가 작업실 바닥을 닦으면 청소할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현민정 작가.

# 현민정 작가 “날씨따라 달리 보이는 풍경, 제주 냄새 모든 것이 좋았다”

20년 차 어린이 미술강사이자 섬유예술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현민정 작가는 이날 재생종이를 이용한 손가방 만들기를 진행했다.

쓰고 난 우유팩으로 만든 재생종이로 씨줄, 날줄 엮으면 탄생하는 손가방은 음료수병, 지갑, 자동차키를 넣을 정도의 크기로 나들이 가방에 안성맞춤이어서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천에 염색을 하고 바늘과 색실을 가지고 그림 그리듯 섬과 오름, 돌담 등 제주의 풍경을 표현하는 게 제 작업입니다. 감물과 비슷한 색감의 초가에서 작업을 하는 과정을 통해 긍정적인 자극이 될 것 같았어요.”

수없이 물들이기 반복작업을 하는동안 익숙했진 감물색과 비슷한 색감을 가진 초가, 그 안에 자신이 있는 상상만으로도 흥미롭고 이색적이었다는 현 작가에게 제주돌문화공원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줬다.

초가 작업실에 오면 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걸레로 바닥을 닦는 일부터 했다는 현 작가는 “청소라는 게 꼭 해야 할 숙제 같아서 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고는 하는데 여기서는 닦으면 닦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애착이 컸던 공간이었다.

제주바다와 오름,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명체가 그의 작업 대상이 되기 때문에 평소에도 자동차를 다니면서 본 풍경, 사진이 담아내지 못하는 풍경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현 작가에게 제주돌문화공원은 보이는 곳곳이 작업 소재가 된다.

현 작가는 “오름과 곶자왈에서 풍기는 제주의 냄새 그리고 자연에 기대어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맑은 날은 앞집처럼 보이는 오름이 세 개가 보이는데 안개가 낀 날은 오름이 하나가 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날씨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제주돌문화공원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지역 캘리그라피의 대중화를 이끈 주인공, 김효은 작가.
제주지역 캘리그라피의 대중화를 이끈 주인공, 김효은 작가.

# 김효은 작가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제주가 있는 곳”

현 작가 못지않게 제주돌문화공원이 주는 힐링 기운을 온전히 느끼는 입주작가, 김효은 작가.

김 작가는 제주지역에 캘리그라피의 대중화를 이끈 주인공이다.

전국으로 캘리그라피 퍼포먼스를 다니고 강연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매일 새벽에는 랜선으로 라이브 강연도 하고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글꽃’을 통해 보는 이들을 위로하면서 감동을 주고, 때로는 희망을 주지만 정작 김 작가가 쉬어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제주돌문화공원 작업실에 오면 그냥 멍하게 있게 돼요. 멍때린다고 하죠. 진짜 이곳에서는 멍때리고 공허해진 마음을 채우고 재충전을 하는 곳이에요.”

제주돌문화공원 초가작업실은 그런 그의 짐을 모두 내려놓게 만드는 곳이다.

그는 10여 년 전 우도에서 카페를 운영할 때 등교하는 자녀들을 챙기느라 제주시에서 성산까지 자동차를 타고 가서 다시 배를 갈아타고 출·퇴근을 하면서 심신이 피로해져 있을 때 캘리그라피를 만났다.

그는 “하늘이 맑은 날이어도 바다 날씨가 안 좋아서 배가 뜨지 않은 날도 많다”면서 “그때 바다에 대해 다시 알게 됐고 해녀들이 살기 위해 물속에서 나와서 토해내는 숨비소리처럼 캘리그라피가 나의 숨비소리가 돼 줬다”고 말했다.

그런 계기로 ‘해녀아리랑’, ‘다 받아주니 바다더라’ 등 그의 대표작이 나왔다.

그리고 2020년 설문대할망음악제가 그의 전환기가 됐다.

“그때 국악연희단 하나아트와 국악이 더해진 캘리그라피 퍼포먼스를 했는데 공연이 끝나자마자 흐린 하늘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파란하늘이 나왔어요. 그때 신비로운 감동은 지금도 생생해요.”

한때 제주바다의 매력에 빠져 바다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했지만 설문대할망음악제를 계기로 더 많은 공연을 하게 되고 변화기를 겪었다. 그런 이유인지 김 작가는 제주돌문화공원을 찾을 때마다 묘한 기운을 느낀다.

김 작가는 “형식을 벗어난 글씨로 이 분야 이단아이기도 하다” 면서 “하지만 저는 아직도 그림 같은 글씨, 글씨도 작품이라는 신념으로 글을 쓴다”며 확실한 신념을 내보였다.

다듬어지지 않은 제주의 날 것을 가진 제주돌문화공원과 늘 처음의 자신을 상기시키면서 제주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김 작가는 그렇게 닮아가고 있다.

진중하지만 센스 넘치는 신진작가이자 제주돌문화공원 입주작가 가운데 최연소 이계나 작가.
진중하지만 센스 넘치는 신진작가이자 제주돌문화공원 입주작가 가운데 최연소 이계나 작가.

#이계나 작가 “세상에 선물할 부적같은 그림 그릴 것”

문화가 있는 날 초가쉼터에서 ‘자기 신화를 담은 자화상 그리기’를 했던 또 다른 초가작업실의 주인장 이계나 작가. 입주작가 6명 가운데 최연소인 ‘93년생’ 이 작가는 설문대할망과 1만8000신들의 이야기를 떼어놓고는 말할 수 없는 예술인이다.

그는 제주무속신앙과 심방문화, 본풀이 속 신들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 작가의 작품에는 제주의 심방과 본향당, 굿을 할 때 등장하는 무구, 꿩, ‘신의 촛대’로 불리는 제주자생식물 ‘유카’ 등이 등장한다.

그의 제주무속에 대한 ‘진심’은 올해 작품 ‘산방굴사’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 작가는 산방덕이의 전설이 있는 산방굴사를 작품으로 옮기면서 산방굴사의 약수를 한 모금 더해 캔버스 위에 올렸다. 무속을 대하는 그의 진중함과 더불어 MZ세대다운 ‘재치’가 엿보이다.

“저의 뿌리이자 기원은 제주무속이라고 생각해요. 척박한 삶을 이겨낸 제주사람들은 정신적 지주이자 버팀목이 바로 제주무속이었고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종교이자 믿음이잖아요. 샤머니즘에 물감을 바르는 일은 영원의 갈증을 달래는 저만의 의식이기도 합니다.”

제주무속에 굉장한 애정을 나타내는 이 작가와 1만8000신화의 대표격인 설문대할망의 만남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작가는 “제주돌문화공원서 작업하다 보면 제가 그리는 꿩이나 까마귀, 노루는 물론 신서란과 대나무, 상사화, 유채, 코스모스 등 사계절 다른 모습으로 피어나는 동·식물을 볼 수 있다”면서 “특히 돌한마을 안 큰 팽나무를 지나 안쪽에 마련된 설문대할망당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로운 곳으로 가장 매력적”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린시절부터 설문대신화와 같은 태고의 이야기들과 오래된 장소 특유의 영속적인 기운을 사랑해 왔는데 이번 제주돌문화공원에서의 경험은 유한한 인간의 인생을 함께 좀 더 오래 선명하게 할 수 있게 할 용기를 줬다”고 회상했다.

이 작가는 이번에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얻은 기운으로 강인한 생명력을 전하는 ‘부적같은 그림’을 세상에 선물하고 싶다. <끝>

한애리 기자

<이 기사는 제주돌문화공원과 공동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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