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일자리 프로젝트-일하는 노년, 매일이 청춘 ② ‘공드리연구소’
이호해녀회 회원 9명, 바느질하며 간세 열쇠고리 등 수공예품 생산
내달부터 시판해 3~4년 내 자립 목표…물질 안 하는 휴어기 ‘도움’

공드리연구소에 참여하고 있는 이호동해녀들이 22일 해녀탈의실에 모여 폐해녀복을 이용해 굿즈를 만들어내고 있다.
공드리연구소에 참여하고 있는 이호동해녀들이 22일 해녀탈의실에 모여 폐해녀복을 이용해 굿즈를 만들어내고 있다.

‘천만 노인시대’를 앞두고 노인들의 자아실현, 소득 보장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노인일자리사업은 단순 노인문제 해결을 넘어 건강한 사회공동체를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최근들어 사회 각 분야별 이슈에 반영되고 있는 기후위기 시대에 대한 고민은 노인일자리사업 안에도 스며있다.

제주도의 노인일자리사업 대행기관 중 한 곳인 제주시니어클럽(관장 김효의)은 올해부터 ‘환경’, ‘생명’을 주제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지구공존에 동참해나간다는 목표도 세웠다. 고령사회 노인일자리사업이 노인 문제 해결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를 함께 나누자는 취지다. 

지난 3월 출범한 ‘공드리연구소’도 그런 실천의 하나다.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다는 뜻을 담아 이름 지어진 ‘공드리연구소’는 폐해녀복을 활용한 열쇠고리 등 다양한 굿즈를 만들어 내는 시장형일자리 형식으로 제주시 이호해녀회 소속 해녀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 22일 제주시 서해안로에 위치한 이호해녀회 탈의실에서 바느질 삼매경에 빠져있는 이호해녀들을 만났다.

“못 입는 해녀복도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고, 돈도 벌고, 치매 예방도 되고 너무 좋아요.”

노인일자리가 할 만하냐는 질문에 단박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신사숙녀 여려분’할 때 ‘숙녀’라고 소개하는 윤숙녀씨(68)를 비롯해 최고령 송정자씨(84)까지 총 8명의 해녀가 반원형으로 둘러 앉아 손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디자인한 굿즈의 모양따라 폐해녀복을 재단하고 바느질을 한 다음 조각난 폐해녀복을 충전재로 채워넣고 다시 꿰매면 쓰임 잃은 해녀복이 ‘새로 쓰임’의 가치를 안고 태어나게 된다.

공드리연구소는 폐해녀복으로 이호테우해변의 심벌이 된 ‘트래시(Trash) 목마’를 본뜬 제주마(馬)모양의 간세와 하트 열쇠고리 등을 만들고 있다. 폐해녀복으로 만든 제품은 손으로 만졌을 때 말캉거리고 보드라운 느낌 때문에 좋은 반응이 기대된다. 앞서 한경면 고산리 해녀들이 지난해 폐해녀복 굿즈를 생산·판매하면서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공드리연구소의 작업반장인 윤숙녀씨는 “예전에는 해녀복도 구멍이 나면 때우고 꿰매면서 수년을 입었지만 이제는 일년에 한 번 해녀복이 지원된다”면서 “매년 해녀복을 버리는 것도 일이었는데 이번 노인일자리를 하면서 해녀복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게 된 것도 좋은 점”이라고 말했다.

이날 옹기종기 모여앉아 바느질을 하던 어르신들은 과거 고무재질의 해녀복을 태웠다가 연기가 많이 나서 소방차가 출동한 일화를 되뇌이며 한바탕 웃기도 했다.

고소득 해녀들인데 별도의 일자리가 필요하겠냐 싶겠지만 기후 온난화에에 따른 생태계 변화, 일본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 등 바다일터를 일삼는 이들에게도 변수가 많아졌다.

바닷속 물건도 점점 고갈되는 데다 이호는 반농반어를 하는 다른 지역처럼 바다 일을 하지 않을 때 돌볼 밭이 없는 이호동 해녀들에게 노인일자리는 ‘가뭄 속 단비’다.

연간 60일 남짓 물질을 하는 지역도 있지만 과거 제주국제공항이 조성되면서 많은 밭들이 편입돼 남아있는 밭이 없는 이호지역주민들에게 바다는 유일한 일터다.

매달 보름 나흘, 그믐 나흘 등 8일을 제외하고 한 달 20여 일씩 꼬박 물질을 하는 해녀들은 지난 1일부터 금어기가 끝난 소라 채취를 해오고 있지만 점점 추워지면 한 달 20일도 보장할 수 없다.

요즘은 물질을 안 하는 8일 동안 하루 3시간씩 모여 앉아 바느질을 하면서 근무시간을 채우고 있지만 벌써 물질을 하기 어려운 추운 겨울이 걱정이다. 노인일자리 시간이 더 늘어나길 바라는 이유다.

아직 이들이 만들어 내는 제품은 시장에 내놓기에는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지금은 맹연습중이다. 연습하면서 만든 작품이 수백 개에 이른다.

송정자씨는 “느리지만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서 제품을 완성하고 나면 기분이 좋다”면서 “10월부터는 진짜 상품으로 내놓는다고 하니 이상하게 떨린다”고 말했다.

제주시니어클럽 임상민 과장은 “공드리연구소인 경우는 시장형사업으로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기 전 최고 5년까지는 보조금을 투입해 인건비를 지원하고 이후에는 사업단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공드리연구소는 향후 3~4년 이후 자립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제주도와 공동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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