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일자리 프로젝트-일하는 노년, 매일이 청춘 ③새로고침 F5
하루 3시간씩 세척·건조작업해 저소득층에 보급할 화장지로 교환
“할 일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다는 데 감사”…‘비타민’ 같은 일자리

‘새로고침 F5’ 참여자들이 건조된 우유팩을 모으고 있다.
‘새로고침 F5’ 참여자들이 건조된 우유팩을 모으고 있다.

“햇빛도 좋고 선선한 가을바람에 잘 말랐네.”

지난 25일 제주시 오라동 제주시니어클럽 노인일자리사업장 야외에서 만난 ‘새로고침 F5’ 참여자들이 잘 말린 우유팩 수거작업을 하고 있었다.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접속한 사이트의 수정사항이나 새로운 것을 확인하기 위해 마치 처음 접속한 것처럼 사용하는 키보드의 단축키 ‘F5’.

다 먹고 난 우유팩이 다시 쓰임을 얻어 새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데 키보드 단축키 ‘F5’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다. 제주시니어클럽의 ‘새로고침 F5’.

‘새로고침 F5’는 학교나 카페 등에서 나오는 우유팩을 모아 일일이 세척하고 건조과정을 거쳐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제지공장으로 보낸다. 그리고 세척된 우유팩은 다시 생활필수품인 화장지로 돌아온다.

쓸모를 잃은 물건에 새로운 역할을 심어주고 폐자원을 원료로 다시 생산에 투입하는 ‘순환 경제’에도 기여한다.

사회서비스형 노인일자리사업 ‘새로고침 F5’ 참가자들은 경제적 이유를 떠나, 갈 곳이 있고 만날 동료를 만들어주는 일자리는 일상의 ‘비타민’ 같은 존재라고 모은다.

‘새로고침’ 참가자들은 지나 3월부터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3시간씩 매일 오라동에 있는 사업장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제주시니어클럽 하우스 작업장 안에는 우유팩을 씻을 수 있는 씽크대 3개가 일렬로 서 있다.

‘새로고침’ 참여자 10명 중 2명이 학교나 카페 등에서 배출되는 우유팩을 수거하러 나가면 나머지 8명은 씽크대 3개에 각각 3·3·2 대열로 늘어서서 1~3단계 세척 작업을 한다.

하루평균 작업하는 우유팩은 1100여 개.

세척된 우유팩은 컨테이너에 담아져 자연 건조되고, 건조된 우유팩은 전개도로 펼쳐져야 교환가치를 갖는다. 말린 우유팩은 무게를 달아 5㎏씩 소분한다.

“당일 배출되는 우유팩을 바로 바로 가져와서 세척하기 때문에 별도의 약품 처리를 하지 않아도 우유팩에 나쁜 냄새가 남아있지 않아요.”

강수정씨(72)는 상온에서 쉽게 변질되는 우유의 특성상 악취 등에 따른 애로가 있지않을까 우려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강씨는 “매일 우유팩을 씻고 말린 우유팩을 펼치는 작업을 하다 보니까 손가락 관절 통증이 찾아왔는데 이것도 직업병인가 보다”라며서 “그래도 일을 하고 난 뒤에 생활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늙어서 자식들에게 짐이라는 부담보다는 많지 않더라도 스스로 용돈을 쓰고 손주들에게도 쥐어줄 수 있기 때문에 당당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용진씨(71)도 “액수를 떠나서 아직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자신감이 달라진다”면서 “지인들이랑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도 삶의 낙(樂)이 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새로고침 F5’이 작업한 우유팩이 화장지로 재탄생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 노인가구에 전달된다는 자부심이다.

참여자들의 단순 노동이 큰 가치로 사회에 환원되고 그들 역시 ‘쓰임 다한’ 우유팩이 화장지로 되살아나듯 그들이 여전히 사회에 필요한 일꾼이라는 점이 힘든 노동 속 지탱하는 힘이 된다.

하지만 ‘새로고침 F5’가 1년 단위로 추진되는 단기사업이기 때문에 12월 종료를 앞두고 있다.

푹푹 찌는 하우스 작업장 ‘찜통더위’ 속에서도 선풍기 바람 뿐이었지만 매일 만날 사람들이 있어서 하루하루 신이 난다는 참여자들은 벌써 내년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일을 하려는 노인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일자리는 한정돼 노인일자리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현실 때문이다.

“일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참가자의 한 마디가 일자리정책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기사는 제주도와 공동기획했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