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일자리 프로젝트-일하는 노년, 매일이 청춘 ④다새로미
소각될 숙박시설 폐린넨 감물염색해 가방이나 앞치마로 제작
“내 행복이 가족의 행복…사회에 작은 보탬된다는 것이 보람”

“바람이 적당해서 오늘 염색 천이 잘 마르겠네.”

지난 13일 제주시 오라동 제주시니어클럽의 사업장 야외 잔디밭에는 삼삼오오 짝을 맞춘 사람들이 감물들인 천이 일정하게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팽팽하게 펼치고 가장자리마다 송곳을 박아 고정시키는 작업이 한창이다.

높고 파란 하늘과 선선한 가을바람, 아름드리 소나무와 갈색의 천이 한 장의 풍경화처럼 조화를 이룬다.

제주시니어클럽 ‘다새로미’ 참여자들이 제주시 오라동 사업장에서 감물들인 폐린넨을 햇빛에 말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제주시니어클럽 ‘다새로미’ 참여자들이 제주시 오라동 사업장에서 감물들인 폐린넨을 햇빛에 말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제주시니어클럽(관장 김효의)은 올해 노인일자리창출 시범사업으로 숙박시설에서 나오는 폐린넨을 재활용해 앞치마나 작은 주머니, 가방 등을 만드는 일을 위해 ‘다새로미’를 운영하고 있다.

호텔 등 숙박시설에서는 3~5년 주기로 침구를 교체하는데 폐침구류는 스티커를 부착해 배출해야 하는데 소각돼 사라지는 직전의 폐기물에 ‘쓰임’을 새로 부여한다.

숙박시설에서는 폐기물 배출비를 절약하고 소각량을 대폭 줄여 환경보존에 참여하는 ESG경영을 실천하는 셈이 되고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새롭게 제작된 제품은 다시 저소득층과 나눌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다새로미’ 참가자들은 도내 한 호텔에서 폐린넨을 수거해오면 오염되거나 찢어진 부분은 잘라내는 마름질을 하고 감물을 들여 재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염색된 천은 만들어질 제품 디자인에 따라 다시 마름질이 되고 재봉틀 작업을 거쳐 최종 제품을 만들게 된다.

사실 다새로미는 사업 초반에는 애견패드 등 반려동물 관련 제품을 제작할 계획이었지만 염색된 천이 두껍고 좋아서 가방이나 앞치마 등을 만들게 됐다.

‘다새로미’ 참여자들이 미리 만들어 본 가방 샘플
‘다새로미’ 참여자들이 미리 만들어 본 가방 샘플

이 작업을 위해서 ‘다새로미’ 참여자들은 전문가들에게 감물염색과 재봉틀도 배웠다.

진성실씨(67)는 “지난 3~4년 코로나19로 집 안에만 있다보니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이 심했다”면서 “할 일이 없고 나갈 일이 없으니 아침에 일어나도 밥을 먹을 일이 없고 우두커니 앉아 TV보는 일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도 챙기고 버스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니 활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즐거워지니까 가족들이 제일 좋아한다”면서 “매일 하릴없이 집에만 있으면 자녀들이 가장 먼저 걱정하고 쉴새없이 전화를 하는데 아들, 딸들이 안심하기 시작하면서 나 스스로도 마음의 부담을 덜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참여자 문인옥씨(64)도 “아직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나이인데 노인들이 집에만 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손해”라면서 “이렇게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면서 치매에 걸리까, 아파서 자식들 부담되게 하면 어쩌나 쓸 데 없는 걱정도 안 하게 되고 아픈 몸도 안 아픈 것 같다”고 높은 만족도를 표현했다.

참여자들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는 범위에서 노인일자리가 더 많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모씨는 “주위를 보면 노인 일자리도 취약계층 위주로 마련돼 일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지금 여기서 일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지만 이런 일자리가 더 많이 생길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도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염색돼 잘 마른 천은 재봉틀 작업을 거쳐 가방과 앞치마 등의 제품으로 태어나 필요한 가정에 보급된다.

작은 힘이라도 우리 사회에 작은 보탬이 되고 있다는 그 사실이 노인일자리 참여자들의 보람이자 쇠약해져가는 몸과 마음의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다.

<이 기사는 제주도와 공동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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