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일자리 프로젝트-일하는 노년, 매일이 청춘 ⑤숨은 조력자
작년 제주지역 노인 11만5768명 중 ‘일하는 노인’ 10% 불과
행정 주도의 일자리 만들기 ‘한계’…민간형 취·창업 장려 절실

“과거에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무탈해야 집안이 편안했는데 이제는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한거더라고요.”

한 노인일자리 참여자의 말 한마디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정년이 돼서 은퇴를 한 지금의 부모 세대들은 자식 뒷바라지에 정작 자신들의 노후를 대비할 겨를이 없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마땅한 일거리 없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신들은 스스로도 무기력해지고 장성한 자식들의 걱정거리로, 짐을 지어주고 있다는 불편함이 마음 한 구석을 옥죈다. 그런 그들에게 삶의 기쁨과 활력이 되는 것은 ‘할 일’을 만들어주는 노인일자리다. 100세 시대, 아직 쓸 만하다는 위로이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는 희망이다.

지난해 말 제주지역 65세 이상 노인인구수는 총 11만5768명(여성 6만5725명, 남성 5만43명)으로 전체 인구수 67만8159명이 17%를 기록하고 있고 이대로라면 오는 2027년 초고령사회가 전망된다.

그러나 여기에 비해 제주지역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실적은 10%에 불과하다.

제주도의 연도별 추진현황에 따르면 2019년 1만1441명, 2020년 1만2130명, 2021년 1만1116명, 지난해는 1만1782명(10.2%)로 간신히 10%를 넘겼다.

행정 주도의 노인일자리와 함께 민간형 취·창업의 장려와 적기적소의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노인일자리 정책의 중요한 과제가 됐다.

이런 필요성에 공감하며 노인일자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기업도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청호제지㈜ 청호자원  문영기 대표.
청호제지㈜ 청호자원 문영기 대표.

# 청호제지㈜ 청호자원, 비싼 단가로 우유팩 매입

청호제지㈜ 청호자원(대표 문영기)는 10년 전 제주지역에서 우유팩 재활용사업을 처음 시작한 기업으로, 우유팩을 육지부 공장으로 보내 화장지 원단으로 재생산한 후 다시 제주에서 화장지를 만들던 곳이다.

다른 사업을 위해 화장지 공장은 올해 초 정리하고 지금은 우유팩재활용사업만 하고 있다.

청호제지㈜는 노인일자리사업을 통해 수집된 우유팩을 2㎏당 두루마리 화장지 1개나 ㎏당 210원에 매입하고 있다.

서귀포시나 제주시가 수거해 온 우유팩에 대해서는 ㎏당 100원에 매입하는 것에 비하면 약 2배 가격으로 처리한다.

“사회는 어느 한 사람이 잘 산다고 잘 돌아가는 것이 아니지 않냐”고 반문하는 문영기 대표는 “노인일자리사업이 단순히 참여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일을 함으로써 취약계층에 다시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순환 방식이라는 것에 공감하기 때문에 함께 하고 있다”면서 “우유팩을 조금 더 비싸게 사더라도 외화를 지출해 재료를 수입하고 화장지를 만들어야 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표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우유팩을 비롯해 세계 각 나라의 우유팩은 공통적으로 가장 질 좋은 펄프를 사용한다”면서 “나무 한 그루를 심어서 가꾸는 데 10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우유팩 156개를 수거해서 화장지를 생산하면 1그루의 나무를 심는 효과와 더불어 우리나라 원화 2만4960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일자리사업을 통해 수거된 우유팩은 1905㎏으로 제주지역에서 수거된 총 18만8259t의 1% 남짓이지만 나무 159그루를 심거나 화장지 30개 들이 64팩을 만들어내는 성과를 냈다.

그는 “노인일자리사업를 함께하고 있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공평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대가 없는 기부보다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제주시 연동에 있는 호텔 시리우스 제주(대표이사 이연근)도 노인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숨은 조력자다.

김석현 호텔 시리우스 제주 마케팅 지배인.
김석현 호텔 시리우스 제주 마케팅 지배인.

# 숙박시설 폐침구류 재활용하고 일거리 창출 ‘일석이조’

호텔 시리우스 제주는 침구류나 타올 등을 교체하면서 쓸모없어진 폐린넨 등을 세탁하고 모아뒀다가 제주시니어클럽에 제공하고 있다. 수수료를 지불하면서 처리해야 하는 골칫거리였던 폐침구류를 재활용도 하고 노인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일석이조 제안에 불응할 이유가 없었다. 폐침구류 세탁작업은 호텔 측에서 해주겠다고 약속도 했다.

호텔 시리우스 제주는 보통 한 달 평균 50장의 침대 시트와 50~70장의 타올을 모아 제주시니어클럽에 제공하고 있다. 폐침구류는 염색과 재단작업을 거쳐 가방 등 새로운 굿즈로 재탄생한다.

김석현 마케팅 지배인은 “제 부모님처럼 일선에서 물러난 어른들을 생각하면서 이 사업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면서 “자연스럽게 ESG경영 실천이 되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업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지배인은 “우연히 다른 지역 마이스(MICE)행사에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서빙을 하는 모습을 봤다”면서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연회장이 더 차분해지고 안정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소회했다.

그는 “어르신들이 연륜과 노하우가 발휘된다는 것은 굉장히 멋진 일이고 그 노하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끝>

<이 기사는 제주도와 공동기획했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