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항쟁 75주년 강정마을 4·3길 답사 ⑤에필로그
강정 첫 학살지 당동산…이름도 짓지 못한 갓난아기도 포함
“강정서 최소 178명 희생…군경에 의한 비극 다시는 없어야”

4·3 당시 강정마을 첫 집단학살지였던 당동산. 지금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4·3 당시 강정마을 첫 집단학살지였던 당동산. 지금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당동산은 강정마을에서 북쪽에 위치한 동산이다. 지금은 도로가 개설되고 일대는 온통 감귤 과수원이어서 당시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가 강정마을 의례회관 인근에 거주하는 김도실 할머니(92세)와 당동산 주변 과수원에서 만난 원순옥 할머니(89세)의 도움으로 겨우 당동산 일대와 당(堂)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동산 도로명 주소는 말질로 161번지 일대다. 현재는 제주 강정동 담팔수라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었다. 상수원 보호구역인데다 철조망이 설치돼 있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원순옥 할머니에 따르면 철조망 안에 큰 당이 있다.

지난 16일 4·3도민연대 강정마을 4·3순례 도중 원순옥 할머니와 김영란 연구원이 만났다.
지난 16일 4·3도민연대 강정마을 4·3순례 도중 원순옥 할머니와 김영란 연구원이 만났다.

이곳은 4·3 당시 강정마을 첫 집단학살 장소다. 1948년 11월 16일 강정 1구 주민들은 중문지서 축성작업에 동원됐다.

인근 중문마을에서 10일 전 벌어졌던 유격대의 중문마을 습격 이후 군경은 중문 관내 주민들을 동원해 순번으로 성(城)을 쌓는 작업을 해왔다.

이 성 쌓는 일을 한창 하고 있을 때 군경은 강정리 마을에 나타나 마을에 남아있던 주민들을 잡아다 총살시켰다.

이때 학살된 주민은 윤태언(53세), 조권식(47세), 박옥현(38세), 김두주(25세), 윤방언(24세) 등 15명이었다.

당시 강정초등학교 교장 임찬호(33세), 임시교사였던 임석현(20세)도 같이 학살됐다. 이뿐만 아니라 밭에서 일하던 홍임표(22세)도 군경에 잡혀 현장에서 학살됐다. 성을 쌓는데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4·3사건 당시 강정마을 희생자 명단.
4·3사건 당시 강정마을 희생자 명단.

김영란 4·3 진상조사단 연구원은 지난 16일 서귀포시 강정마을 4·3길 순례를 가진 자리에서 “이곳은 1948년 11월 17일 계엄령이 내리기 하루 전인 16일 마을 사람들이 잡혀 와 죽임을 당한 곳”이라며 “오늘 순례의 마지막 장소인 만큼 강정마을에서 희생된 178명의 명단을 만들었는데 참배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명단에는 ‘조평구의 자’, ‘임경옥의 자’ 등 ‘누구의 자’ 또는 ‘누구의 처’로 이름이 올려진 희생자도 있다.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는 “우리도 지경만 알뿐,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조사 자료는 없다. 지역주민들로부터 이야기로는 ‘누구의 자’는 이름도 짓지 못한 갓난아기도 죽었다는 것이다. 총에 맞아 죽었는지, 굶어 죽었는지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다만 희생자 신고서에 그렇게 신고됐다”고 설명했다.

양 대표는 “명단에는 178명만 있는데 확인되지 못한 희생자도 있을 것”이라며 “올해 순례의 마지막은 희생된 사실에 대해 정리하고, 희생자들에게 예를 갖추는 것으로 마무리 하겠다. 75년 전 육지 군경 그리고 서북청년단에 의해 죽어간 참극이 다시는 발생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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