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 75주년 중문마을 4·3길 답사] 중문중학원·중문면사무소 옛터②
1948년 11월 무장대 습격 중문중학 교실·직원실 전소
주둔 군인들 면사무소터에 주민들 집합시켜 보복 학살

1945년 설립됐던 중문중학원 옛터. 현재는 주택지와 상가 등이 들어서면서 당시 그 흔적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사진 김진규 기자]
1945년 설립됐던 중문중학원 옛터. 현재는 주택지와 상가 등이 들어서면서 당시 그 흔적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사진 김진규 기자]

중문마을의 4·3은 매우 아픈 과거를 간직한 곳이다. 이곳에 경찰지서, 소방서, 면사무소, 서슬 퍼런 2연대, 서북청년단원에 이어 서청특별중대까지 들어서면서 당시 마을 곳곳이 아비규환의 학살터였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대표 양동윤)가 지난 8일 서귀포시 중문마을 4·3길 답사의 첫 코스는 당시 중문중학원이 들어섰던 자리다.

중문중학원은 1945년 10월 4일 중문동 1584(중문로 45)일대에 설립돼 1947년 7월 18일 중문중학 학술강습소로 개설 인가받았다. 그러나 1948년 11월 5일 아침 인민유격대(무장대) 습격으로 교실과 직원실 모두가 불타버렸다.

이후 1950년 4월 2일 학교건축에 필요한 목재 등을 지원할 당시 서귀포 주둔 2연대 1대대장 전부일의 공로를 치하하는 차원에서 학교 이름을 ‘부문(富文)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기도 했다. 1951년 9월 1일 중문중학교로 이름을 바꿨지만 현재는 과수원 등 밭에서 주택지와 상가 등이 들어서면서 당시 그 흔적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중문면사무소 옛터(학살지)에 자리한 중문동 우체국. 4·3 당시 존재했던 열 두 개의 계단과 곧게 자란 소나무가 보인다. [사진 = 김진규 기자]
중문면사무소 옛터(학살지)에 자리한 중문동 우체국. 4·3 당시 존재했던 열 두 개의 계단과 곧게 자란 소나무가 보인다. [사진 = 김진규 기자]

중문학원이 있던 자리에서 500여m 떨어진 중문면사무소 옛터는 학살지였다. 현재 중문동 우체국(중문로 6-1)이 자리했다.

중문면사무소는 1948년 11월 5일 인민유격대(무장대)가 중문마을을 기습하면서 완전히 불탔다. 당시 중문 주둔 군인들은 불타버린 면사무소 터에 주민들을 집합시키고 공개적으로 보복 학살했다.

당시 학살된 주민은 강정생(여, 50), 이찬석(남, 39), 이승홍(남, 25), 김덕화(남 22), 김석홍(남, 21), 고산월(여, 17) 등 6명이다.

이 중 강정생과 고산월은 각각 고두옥의 어머니와 여동생이다. 9연대 군인이었던 고두옥이 부대를 탈영해 유격대원이 되자 그 가족이 보복학살을 당했다.

당시 중문면사문소 자리에는 우체국이 들어섰지만, 4·3학살지였다는 안내판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당시 면사무소로 가는 열두 개의 계단은 우체국 정문 앞 왼쪽에 남아 있었다. 우체국 앞에 소나무도 당시 옛 사건을 증언하듯 곧게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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