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 75주년 중문마을 4·3길 답사] 에필로그⑥
해방과 3·10 총파업 이은 격변기 도내 최대 피해 현장
시골 면소재지지만 2연대·서청 등 주둔 곳곳이 학살

4·3사건 당시 중문 주민 37명이 학살됐던 ‘자운당 골짜기’ 앞에서 ‘서귀포시 중문마을 4·3길’ 답사에 동행한 도민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4·3사건 당시 중문 주민 37명이 학살됐던 ‘자운당 골짜기’ 앞에서 ‘서귀포시 중문마을 4·3길’ 답사에 동행한 도민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4·3은 제주 섬 전 지역이라고 해도 된다. 제주 섬 곳곳이 4·3인 것이다. 어느 곳, 어느 마을 4·3이 없는 곳이 없고, 4·3피해자 없는 마을이 없기 때문이다. 생면부지의 제주사람도 4·3이야기라면 쉽게 친해진다.

그러나 중문마을에서 4·3을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중문마을의 4·3은 매우 아프다. 일제강점기에는 시골마을의 면소재지에 불과했지만 이곳에 경찰지서, 소방서, 면사무소, 서슬퍼런 2연대, 서북청년단원들에 이어 서북청년특별중대로 당시 마을 곳곳은 학살터가 됐다.

행방과 3·1절, 3·10 총파업, 4·3까지 격변기의 현장이 있던 중문마을에는 이를 잊지 않고 기리는 4·3성지 중문성당이 있고 그 후손들이 건립한 위령비가 서귀포시 천제연 폭포 주차장 인근에 있다.

천제연 폭포처럼 제주의 관광지 대부분이 4·3유적지다. 2~3분 간격으로 이착륙하는 제주국제공항과 성산포 일출봉 일대와 터진목 일대 등이 대표적이다. 4·3 당시 제주 주민들이 무참히 학살당한 곳이다.

이처럼 제주 섬 곳곳이 4·3유적지여서 마을 곳곳에 잃어버린 마을 표석도, 4·3마을길이라는 표지판도 어렵지 않게 마주치게 된다. 그러나 중문마을처럼 4·3을 오롯이 엿볼 수 있는 마을은 드물다.

중문 주민들은 3·1절과 3·10 총파업 이후인 3월 15일과 17일, 두 차례에 집회에 3000명이나 참여해 중문지서에 수감된 마을지도자 석방을 요구했지만 응원경찰은 총격으로 주민 8명에게 총상을 입혔다. 3월 1일 집회를 주도한 강팽선 중문면 민청위원장과 강성추 부위원장 등의 석방 요구에 대해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한 것이다.

당시 중문지서 주임을 비롯한 경찰관 5명 전원은 3월 13일 직원회의를 거쳐 파업에 참가했다가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중문마을에는 해방의 역사가 있고 3월 1일 나라 찾은 기쁨을 마음껏 표출했지만 3·10 총파업에 이은 한국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4·3, 응원경찰과 2연대, 서북청년단에 의한 백색테러로 수없이 죽어간 주민희생과 현장들이 집성된 곳이라는 점에서 이번 답사는 4·3의미와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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