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은혜의 첫 길’

제주 기독교 순례길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코스인 ‘은혜의 첫 길’은 1908년 2월 한국교회 최초로 배출된 7명의 목사 중 한명이자 최초의 선교사인 이기풍 목사의 제주선교 여정을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 항일운동과 교육사업 현장을 걷는 길로 제주 선교의 밑거름 역할을 감당한 초기 제주도 기도교인들이 받은 은혜의 길이다.

▲ 제주시 삼도2동에 위치한 제주성내교회는 기독교 순례길 다섯번째 코스인 '은혜의 첫 길'의 시작점으로 이기풍 목사의 제주도 선교 초기 중심교회이자 제주 최초의 교회다.

제주성내교회~제주YMCA~관덕정~이기풍목사 산지포구~제주영락교회~순국지사 조봉호 기념비까지 이어지는 약 8km의 코스로 차량과 도보이용이 가능하다.

시작점은 제주성내교회다. 이기풍 목사의 제주도 선교 초기 중심교회이자 제주 최초의 교회다. 제주에 첫 선교사로 파송된 이기풍 목사는 처음 중인문안 초가에 임시기도소를 두고 활발한 전도활동을 시작했고, 이때로부터 이 땅에 기독교의 뿌리가 내리게 되었다. 1974년 현재의 예배당을 건축했으며 2008년 교회창립 100주년기념비를 제막했다.

성내교회 바로 옆에 위치한 제주YMCA는 1903년 기독교 청년회를 창설하며 시작됐다. 제주의 가장 오랜 NGO로 1951년 한국전쟁 중에 교계 지도자들과 피난 온 기독교계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돼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의 한 부분을 담당했으며 교육과 문화 활동을 전개했다.

▲ 이기풍 목사는 당시 제주시내의 가장 큰 시장이 있고 제주 정치의 중심적 역할을 했던 관덕정을 전도의 중심지로 삼고 선교활동을 해나갔다.

이기풍 목사가 선교하던 당시 제주시내 가장 큰 시장이었던 오일 시장은 관덕정 앞에 위치해 있었다. 관덕정은 군사 훈련과 검열을 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민관이 함께 공사를 의논하거나 잔치를 베푸는 제주정치의 중심적 역할을 했던 곳으로 전도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1908년 2월 이기풍 목사는 제주 선교를 위해 산지포구에 도착했다. 당시 산지포는 육지로부터 문물이 오가는 거점으로 교역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진 곳으로 이기풍 목사도 산지포구를 통해 제주에 들어와 가까운 칠성통에 임시 거처를 정했다. 그런 점에서 산지포구는 제주 기독교 선교역사에 의미가 있다.

▲ 1908년 2월 이기풍 목사는 제주 선교를 위해 육지로부터 문물이 오가는 거점으로 교역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진 산지포구에 도착했다.

은혜의 첫 길은 기독교 교육사업의 현장을 엿볼 수도 있다. 이기풍 목사는 제주 성내교회에 영흥학교를 설치했는데 영흥학교는 선교차원에서 시작한 신식교육의 장이었다. 영흥학교는 영흥의숙으로 확장됐고 모슬포지역 광선의숙과 협재의 영재 야학부, 특히 제주 최초의 유치원(현 중앙유치원)으로 이어진다.

순례길 끝에는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제주의 인물을 만나볼 수 있다. 바로 순국지사 조봉호 선생이다. 일찍부터 한학을 익혔던 조봉호는 한양에 상경해 근대교육기관인 예수교중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제주로 내려와 금성리에서 기도모임을 이끈다.

▲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공원내에 위치한 순국지사 조봉호기념탑.

이기풍 목사가 제주에 도착한 후 신앙과 교육으로 민중계몽에 앞장서는 일꾼이 됐으나 1951년 5월 독립군 자금모금을 주도하다 체포돼 대구교도소에서 수감 중에 순국한다. 해방 후 그의 활동이 발굴돼 사라봉 자락에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제주의 인물로 그를 기념하는 순국지사 조봉호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처럼 ‘은혜의 첫 길’은 초기 제주 기독교 선교활동의 역사적 흔적과 동문시장, 산지천의 현대적인 모습도 만나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교차하는 길이다. 또한 독립운동에도 앞장섰던 초기 제주 기독교인들의 열정과 가문에서 쫓겨나면서까지 믿음으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한 신앙인들의 삶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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