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인 기자 (문화부)

‘아...귀찮아’
그녀를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시각·청각 장애를 앓고 있는 작가였다. 우연히 그녀의 전시에 기획을 맡게 되면서 자료조사차 몇 번 만났다. 그녀와 대화를 할 때는 컴퓨터 타자를 이용해야 했다. 시야가 일반인의 5분의 1만 보이는 그녀였다. 처음에는 열심히 타자를 치며 발짓과 손짓으로 설명해주던 내가 지치기 시작했다. ‘아...귀찮아’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귀찮기 시작하자 그녀에게 설명해주던 것들을 내 멋대로 해석해서 간단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죄책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기 합리화했다. 사람들과 함께 한 전시회의에서 그녀는 몇 번 봤다고 나에게 지금 무슨 이야기하는 것이냐고 제스처를 보냈다. 귀찮았다. 대화는 순식간에 지나갔고 다른 대화 주제가 이어졌는데 이미 지나간 것들을 난 설명해줘야 하고 또 내 일도 해야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할머니 한 분이 전화기를 들이댔다.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폴더폰 스피커를 톡톡 치더니 내 귀에 가져다댔다. “거기 어디예요?”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던 버스가 급작스레 와서 그냥 버스를 탔다.

“우리는 지금 비장애인이지만 언젠가 장애가 될 수 있는 거고 우리가 그 사람들을 보는 게 우리 보는 거나 마찬가지지. 우리도 언젠가는 장애인이야” 

지난 11일 한라체육관에서 제주시장애인한마음축제가 열렸다. 문화기사 뭐 없을까 갔던 곳에서 자원봉사자를 만났다. 아줌마 파마를 한 김춘열님은 자식 역시 2급 장애를 갖고 있었다. 그녀가 전해준 “우리도 언젠가는 장애인이야” 말에 뜨끔했다. 

“오늘 걷기대회 동반한 정소라는 나를 보더니 엄마 같데. 우리엄마 하늘나라 가있어요. 내 손을 꼭 잡고 완주하는데 가슴이 너무 뭉클했어요”라는 그녀의 말에 내 마음이 묘했다.

취재를 위해 인터뷰를 하고 행사의 취지가 뭔지도 모르고 평소 장애인에 대해 서로 다름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던 내가 위선적이란 걸 스스로 인정했다.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빗물이 먼저 떨어지냐 나중에 떨어지냐 그 차이지. 나도 언젠가는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건데 나이가 들면 비장애인, 장애인 없이 다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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