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장영씨 2008년 유학길 올라 제주 매력에 풍덩
결혼 후 중국어 과외, 어엿한 지역사회 일원으로 성장
8.된장찌개 즐기는 ‘제줏댁’ 중국인 장영씨

2008년 제주도로 유학온 중국 출신 장영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8년 제주도로 유학온 중국 출신 장영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8년 12월, 찬바람과 눈보라를 뚫고 가족을 뒤로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그녀의 목적지는 제주대학교. 중국 천진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하고 1년간 한국어를 공부한 뒤 제주대학교 회계학과에 교환학생을 신청했다. 장영씨(33)는 그렇게 꿈에 그리던 유학을 위해 제주도에 발을 디뎠다.

장씨의 유학은 쉽지 않았다. 제주도에 도착한 뒤에도 학원을 전전하고, 대학 교재로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해야 했다. 친구가 없으니 누구에게 물어볼 수 조차 없었다. 외로워서 고향인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들었다. ‘된장찌개’가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식이라는데 그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먹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장씨는 “처음에는 한국에 거주할 생각이 없었어요.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어요. 그런데 계속 공부하고, 도전하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러다 3학년 때 현재 남편을 만나서 2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됐어요”라며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웃음 지었다.

2008년 제주도로 유학온 중국 출신 장영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8년 제주도로 유학온 중국 출신 장영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무남독녀 외동딸을 둔 부모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장씨는 “제가 외동이라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근데 중국도 워낙 넓어서 중국에 있는 대학에 가서 취업 후, 결혼을 해도 자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제주도와 중국까지 비행기로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도 고심 끝에 승낙해 주셨어요”라고 설명했다.

장씨는 졸업 후 제주도내 부동산 회사에 입사했다. 3년간 근무하다 남편과 함께 여행사도 운영했다. 하지만 중국발 한한령,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관광업계에도 찬바람이 불었다. 문을 닫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이와 가정을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장사하는 모습을 보고 철이 빨리 들었던 덕분일까. 장씨가 선택한 일은 중국어 개인 과외였다.

장씨는 “코로나 때문에 취업하기도 어려워서 할 수 있는 것을 도전하게 됐어요. 전에도 아르바이트로 중국어 과외를 했는데 2년 전 정식으로 사업자를 등록하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장씨는 개인 과외를 위해 현재 일주일에 네 차례 영어교육도시로 출근을 한다. 장씨는 “중국어 과외는 4살 어린이부터 14살까지 학생들을 대상을 해요.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가르치려고 노력해요”라며 “제주에서 결혼하고 정착해서 소중한 가정과 아이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장씨는 어떻게 하면 기억하기 쉬운지 미리 수업 내용을 정리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기 때문에 수업은 어렵지 않다고 했다. 다만 학생 부모들에게서 받는 심리적 압박감이 크다고 했다. 장씨는 “내용은 교재에 따라서 잘 정리해서 강의하면 돼요. 근데 아이들의 학습 수준이 일률적이지 않기 때문에 학습 정도가 빠를 수도 있고 늦을 수 있어요. 그러면 부모님에게 눈치가 보이죠”라며 “6개월, 1년 정도 과외를 하다가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감을 보이거나 중단해요. 그러면 저에게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압박이 되는 건 사실이에요”라고 말했다.

2008년 제주도로 유학온 중국 출신 장영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8년 제주도로 유학온 중국 출신 장영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장씨는 2015년, 2017년, 2019년 두 살 터울로 아이 셋을 낳았다. 그는 어느새 제주 사람이 다 돼 있다고 했다. 장씨는 “제주에 살아보니 마음이 편해요. 복잡하지 않고, 자연환경도 아름답고요”라며 “이미 제주가 내 집 같아서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살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이미 제주에 빠져 버렸어요”라고 말했다. 장씨는 지난 2013년부터 시어머니와 같이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다투거나 얼굴 붉힌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장씨는 “시어머니가 저에게 많이 양보해 주셨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래도 제가 복을 타고났나 봐요”라고 환하게 웃었다.

장씨는 한국말, 제주어가 어려웠는데 큰 아이를 낳고 말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더욱이 최근 아이 교육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했다. 장씨는 “큰 아이가 태어나고 책도 읽어줘야 하고, 상담도 받아야 해서 한국말이 그때 많이 늘었어요. 사실 아이와 같이 한국어를 배운 셈”이라며 “그런데 요즘 아이들 교육이 가장 어려워요. 시내권 초등학교에 비해 다양한 시설이 부족해요. 아이 교육문제를 생각하면 더 넓은 시내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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