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시대 다양성이 존중되는 제주만들기
14. 농사일 하며 ‘삼춘’들과 어울리는 최이리나씨
시부모님‧다둥이들과 함께 ‘알콩달콩’ 행복 키워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가 가장 예쁘다’는 최이리나씨.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가 가장 예쁘다’는 최이리나씨.

최이리나씨는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고려인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지에서 식당일을 하던 중 2005년 4월, 22살의 나이에 남편과 결혼을 하고 한국으로 왔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인천공항까지 7시간의 비행 후 또다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였다. 그의 제주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국말을 ‘1도’ 몰랐던 최씨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며 말을 배웠다. 최씨는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시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대화할 친구도 없었는데 시아버지께서 한국말을 잘 가르쳐 주셔서 말이 빨리 늘었다”며 “특히 시아버지께서 주민들과 빨리 친해지라고 마을 총회도 무조건 데리고 갔다. 동네에서는 인사도 잘하고 착하다며 ‘삼춘’들이 칭찬도 해주셨다. 아버지 덕분에 제주도 사람이 다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짜고 기름진 우즈베키스탄 음식과 비교해 한국 음식에 설탕이 조미료로 들어가는 게 낯설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음식은 몸국과 고사리육개장이었다. 그는 “몸국의 국물이 고향 음식과 비슷해서 좋았다”며 “지금은 제주도 음식은 가리지 않는다.  그중 배지근한 국물이 일품인 몸국과 고사리육개장은 지금도 좋아한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은 바다가 없어서 해산물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해녀인 시어머님께서 보말을 잡아오면 맛있다고 몸에 좋다며 주셨는데 그때는 못 먹었지만 지금은 잘 먹는다”고 웃음 지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가 가장 예쁘다’는 최이리나씨.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가 가장 예쁘다’는 최이리나씨.

그는 제주에 온 이듬해인 2006년 첫 아이를 낳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었다. ‘애가 애를 낳은 셈’이었다. 그 뒤로 줄줄이 아이 셋을 더 낳았고 막내가 현재 초등학교 4학년이다. 그는 “처음 임신을 하고 집에만 있기 너무 심심해서 시부모님의 농사를 거들어 드렸다. 부추와 쪽파 다듬는 일이었는데 곧잘 배웠다. 그 모습이 대견해 보이셨는지 지금은 시아버지의 도움으로 조금씩 농삿일을 계획해 스스로 하고 있다”며 “농약과 비료도 뿌리고 밭에 있는 검질(잡초)도 뽑고 있다”고 웃음 지었다.

그는 농약을 뿌리고 난 뒤 비가 내리는 게 가장 속상하다고 했다. 그는 “농산물이 잘 되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근데 농작물이 병에 걸려 300~400평짜리 밭을 분무기를 매고 농약을 뿌리고 났는데 비가 내리면 속상하다”며 “어느새 제주 여성 농민이 다 됐다”고 수줍게 웃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하루가 달리 커가는 자녀들을 친정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 아이들과 함께 가고 싶은데 여러 이유로 쉽지 않다”며 “혼자 가는 것보다 아이들이 컸으니까 한번만이라도 엄마의 나라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아버지도 볼 겸 꼭 고향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고향’ 같은 곳이라고도 했다. 그는 “제주도가 좋아서 육지에서 살고 싶지 않다. 아마 제주도가 내 고향이 될 것 같다. 앞으로도 제주도에 살겠다”며 “특히 하귀가 좋다. 시내까지 멀지도 않고, 바닷가 풍경, 특히 밤에 낚시 배가 밝히는 불빛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